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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6편을 그리스도의 부활로 이해하기

소소한행복^^ 2022. 11. 19.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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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6편을 이해하는 열쇠는 사도행전 2:25~28에서 발견되는데, 거기서 베드로는 8~11절을 그리스도의 부활을 가리키는 말씀으로 인용하고 있다. 무덤(사망)의 문을 여신 분은 성경의 증언으로 나사렛 예수시다. 구약은 그것을 미리 다윗의 입술을 통해 예언하였으며, 우리의 놀라운 구주께서는 죽음을 목전에 두고 본 시편을 아버지께 직접 아뢰는 기도로 사용하셨다.


1  하나님이여 나를 보호하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2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16:1~2 온전히 하나님을 의뢰하는 완전한 사람으로서 그리스도께서 유일한 피난처 되신 분께 보호를 호소하신다. 30년 간 지상의 삶을 사는 동안 구주께서는 하나님을 주(主)로 인정하셨을 뿐 아니라 하나님을 자신의 삶의 다함 없는 열정으로 즐거이 고백하셨다.

“주를 떠나서는 나의 선함이 없다”(우리말 성경에는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고 번역됨)는 말은 구주의 무죄성을 부인하는 말이 아니라 단순히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안에서 모든 충족을 발견하셨다는 것을 감동적으로 증거하는 말이다. 이 증거는 시편 73:25의 고백과 비교할 수 있다.

“내 육체와 마음은 쇠잔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오 영원한 분깃이시라.”


3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저희에게 있도다

16:3 그러나 메시야의 삶이 하나님을 중심에 두었다고 해서 땅에 있는 성도들에 대한 깊은 관심이 배제되는 것은 아니다. 사실 그 둘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분의 백성을 사랑하는 것이다(요일 5:1,2). 주 예수님은 자신의 성도를, 그 안에서 모든 기쁨을 발견하는 땅의 존귀한 백성으로 여기신다. 어느 연로한 하나님의 성도의 유사한 고백을 들어보자.

“인생을 시작한 첫 날부터 이 시간까지, 나는 죄악된 죽을 인생이 입을 수 있는 최고의 존귀를 입어왔다. 나의 벗들은 이 땅에서 가장 훌륭한 자들이었으며, 그들은 주님을 위해서 온 정성을 다해 내게 친절을 베풀어왔다.”16)


4  다른 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자는 괴로움이 더할 것이라 나는 저희가 드리는 피의 전제를 드리지 아니하며 내 입술로 그 이름도 부르지 아니하리로다

16:4 하나님의 참 경배자들과 현저히 대조를 이루는 자들이 있으니, 그들은 다른 신을 경배하는 자들이다. 우상숭배는 반드시 그 참가자의 삶에 슬픔의 흔적을 남긴다. 아마 우상숭배자들에게 임하는 최대의 심판 중 하나는 그들이 그 숭배 대상과 같아진다는 것이리라. 하나님의 거룩하신 아드님은 그들이 드리는 피의 전제(奠祭)에 참여하는 것을 일절 거부하신다. 사실 그분은 그들에 대해, 혹은 그들의 이교도 의식에 대해 관용을 암시하는 태도로 그 이름을 언급
하는 것조차 거부하신다.


 5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
 6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16:5~6 그 개인적인 삶에 있어서, 그리스도께서 택하신 산업(분깃)과 잔은 여호와이시다. 그분의 모든 부요와 즐거움은 하나님께 의존한다. 그분의 기업의 경계를 지키시는 이는 여호와이시다. 아버지께서 얼마나 지혜롭고 놀랍게 자신의 삶을 세세히 계획하신 것을 생각하면서 그분은 그것을, 전망이 뛰어난 아름다운 곳과, 아름다운 것들로만 이뤄진 기업에 비유하신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 가운데 살아가고 있다면 우리 역시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장식해주시는데 대해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다. 혹 우리가 불평을 하 고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과 능력을 믿지 못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7  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할찌라 밤마다 내 심장이 나를 교훈하도다

16:7 여기서 그리스도께서는 삶의 모든 순간에 지도와 교훈을 베풀어주신 신실하심으로 인해 여호와를 찬양한다. 기도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느라 잠을 못 이루는 시간에도 그분의 마음이 그분을 교훈했다. 시간은 낭비됨 없이 그분을 위로하고 축복하는데 드려졌다. 그리스도의 이같은 경험은 얼마나 종종 하나님의 백성의 삶에서 되풀이되는지!


“빛의 아들들 가운데 많은 훌륭한 시인들이
그 아름다운 작품에 대해 고백하는 말,
‘나는 밤에 그것을 배웠다네.’
아버지의 집을 채우는
많은 아름다운 찬송이 처음 흘러나온 곳은,
어두운 방 그늘이네.”
(저자 익명).


시편 16편 나머지 구절들은 오순절 날 베드로에 의해, 그리스도의 부활을 가리키는 말씀으로 인용되었다.

“다윗이 저를 가리켜 가로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웠음이여, 나로 요동치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입술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는 희망에 거하리니,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치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셨으니 주의 앞에서 나로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 하였으니, 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미리 보는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말하되, 저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행 2:25~33).

그러면 베드로 한 말의 요지를 살펴보자(베드로의 해설이 없었다면 이 시의 대부분 요지를 우리가 파악하지 못했을 것이다).

(1) 다윗은 그리스도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25절). 다윗은 그 몸이 지금도 예루살렘 무덤에 있으므로 그 자신에 대해 말했을 리가 없다.

(2) 선지자로서 시편기자는 그분의 보좌에서 다스릴 때가 오기 전에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살리실 것을 알았다.

(3) 따라서 다윗은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영혼을 음부에 머물게 하거나 그리스도의 몸을 썩도록 내버려두지 않으시리라고 예언했다.

(4) 하나님은 실로 그리스도를 일으키셨으며, 오순절 날 일어난 일은 그분이 하나님 우편에서 영광을 얻으신 결과였다.

이상의 서론을 염두에 두고 이제 이 시의 마지막 구절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8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16:8 먼저, 메시야께서는 자신이 여호와를 항상 앞에 모시고 있다고 일절 모호함 없이 고백하신다. 여호와께서 메시야의 삶의 목적이었다. 메시야께서는 자기 스스로 아무것도 행치 않으셨다. 모든 일은 그분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행해졌다.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성경에서 “우편”(오른손)은 다음과 같은 의미가 있다.

능력(시 89:13), 안전(시 20:6), 존귀(시 45:9; 110:1), 기쁨(시 16: 11), 은총(시 80:17), 지원(시 18:35).

여기서는 안전과 안정을 가리킨다.


9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쁘고 내 영광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거하리니
 10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


16:9~10 하나님의 변함 없는 돌보심과 보호를 확신하며 구주께서는 미래를 확신을 가지고 바라본다. 그분의 마음은 기뻤다. 그분의 영(우리말 성경 난하주 참조-역주)은 즐거워했고 그분의 육체는 안전했다. 그분은 하나님이 자신의 영혼을 음부에 버려두거나 자신의 육체로 썩음을 보지 않게 하실 것을 알았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실 것이다.

음부(스올)에 대한 언급은 설명이 필요하다. 그것은 구약에서 무덤이나 “저승”(netherworld)이나 혹은 육체를 떠난 상태를 묘사하는데 사용되었다. 그것은 헬라어 “하데스”(지옥)와 동일하다. 음부는 지리적인 위치가 아닌 죽은 자의 ‘상태’-인격이 육체에 분리된 상태-를 가리켰다. 그것은 신자와 불신자를 막론하고 모든 죽은 자를 묘사하는데 사용되었다. 반면에, 신약의 동의어인 ‘하데스’는 ‘불신자’에 대해서만 사용된다. 음부는 매우 불분명하고 부정확한 단어였다. 그것은 죽음 후의 삶에 대해 명확히 표현해주지 않았다. 사실 그것은 정확한 지식보다는 불확실함을 더 표현해주었다.

신약에서는 모든 것이 변했다. 그리스도께서 복음을 통해서 생명과 썩지 않음을 밝히 드러내셨다(딤후 1:10). 오늘날 우리는 불신자가 죽으면 그의 영과 혼은 하데스라 불리는 고통의 상태에 처하고(눅 16:23) 그 몸은 무덤에 들어간다는 것을 알고 있다. 신자의 영과 혼은 하늘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기 위해 올라가고(고후 5:8; 빌1:23) 그 땅에 속한 몸은 무덤에 들어간다.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라고 구주께서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이 그분을 육체가 분리된 상태에 머물게 하지 않으실 것을 그분이 미리 알고 계셨음을 드러낸 것이다. 그분은 비록 음부에 들어가긴 했지만 그곳에 머물지는 않으셨다.

하나님은 정상적인 부패 과정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셨다. 기적적인 보존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생명 없는 몸은 사흘동안 썩음에서 보존된 것이다.


11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16:11 마지막 구절에서 우리의 복스런 주님은 하나님이 생명의 길-죽음에서 생명으로 다시 돌아오게 하는 길-을 자신에게 보여주실 것을 온전히 확신하셨다. 그 길은 궁극적으로 그분을 하늘로, 하나님 존전으로 인도하실 것이다. 거기서 그분은 기쁨의 충만과 영원한 즐거움을 경험할 것이다.


*참고/ 부활을 주장하는 본문이 구약의 여러 곳에 있다(참조, 욥 14:14-15; 19:25-27; 시 17:15; 49:15; 56:13; 73:24,25; 86:13; 사 26:19; 단 12:2). 겔 37장은 개인의 부활에 대한 본문이 아니라 국가의 부활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전도출판사"의 《윌리암 맥도날드 ‘신자 성경주석’ 시가서(1), 정 병 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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