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의 삼각형(성경의 계시, 영감, 조명)
시편 19편은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을 알 수 있는가에 대한 시이다. 인간은 스스로의 능력으로 하나님을 발견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해 주셔야만 인간이 하나님을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두 가지 방법을 사용하여 자신을 계시하신다. 일반계시 즉, 지연을 통해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과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드러내신다. 자연 계시(하나님께서 자연을 통하여 자신을 계시하신다, 시 19: 1-6절, 참조, 롬 1:19-20; 2:14-15) 그리고 특별 계시이다(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통하여 자신을 계시하신다). 이 계시는 성경에 기록되었고, 하나님의 아들로 절정에 이른다(시 19: 7-11 절, 참조, 요 1: 1-14; 14:6,9; 고후 5:17-21)
각 사람이 하나님의 계시를 반드시 개인적으로 받아들여야만 하며, 또 그 계시를 따라서 살아야 한다. 이 삶은 근본적으로 신조(신경)에 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누리는 관계’에 대한 것이다.
이 시편은 성경의 진실성과 소중함을 나타낸다(즉, 7-10 절).
이 시편은 매일 죄와 씨름하는 가운데 누리는 소망과 평안을 준다(즉, 11-14 절).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시 19:7)
하나님의 계시가 가진 특징을 시편 19편은 이렇게 열거한다. “완전하여. . .확실하여 . . .정직하여 . . .순결하여 . . .정결하여 . . .진실하여”(시 19:7-9).
성경은 하나님의 유일하며 분명한 자기 계시이다. 이것은 믿음으로써 하는 중요한 고백이다. 이것을 일반적으로 “영감”이라고 불린다.
“단 한번”과 관련된 믿음은 기독교의 진리, 교리 , 개념, 세계관에 대한 가르침을 의미한다(참조, 벧후 2:21).
벧후 2:21/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저희에게 나으니라
‘단번에’에 주어진 강조점은 신약의 책에 대하여 신학적으로 제한된 영감을 적용하는 성경적 근거가 되며, 또한 이후에 속하는 기록이나 다른 모든 종류의 책을 계시로 여기지 않게 한다. 신약에 애매하고 불확실하며 불분명한 면이 많이 있음에도, 신자들은 믿음과 행함을 위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이 신약에 분명하고 충분하리만큼 있음을 믿음으로 고백한다.
이 개념은 “계시의 삼각형”으로 불리는 것으로 명확해진다.
1. 하나님께서는 시간과 공간을 차지하는 역사 안에서 자신을 계시하셨다(계시)
2. 하나님께서는 어떤 인간 저자를 택하사 하나님의 행하 심을 기록하고 설명하게 하셨다(영감)
3.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성령을 주사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을 열어 이러한 기록을 이해하여(정의를 내리는 것이 아님) 구원을 받으며 또 효과적으로 그 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 있게 하셨다(조명)
이것의 핵심은 영감이 성경의 저자들에게만 제한되어 있다는 점이다. 성경 이외에는 어떠한 권위를 가진 기록이나 비젼이나 계시가 없다. 정경은 마쳐졌다. 우리는 하나님께 바르게 응답하고 그를 기쁘시게 하기에 필요한 모든 진리를 가지고 있다.
성경의 저자들은 서로 일치하지만, 신실하고 경건한 신자들이 서로 일치하지 못하는 모습을 통해 이 진리가 잘 드러난다. 오늘날의 어떤 저자나 설교가도 성경의 저자들이 가졌던 영적 지도력의 수준에 이르지 못한다. 밥어틀리의 시편 주석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