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황무지에서...광야에서

소소한행복^^ 2024. 6. 28. 10:45
728x90

황무지와 광야는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40여 년 동안 방랑하던 황량하고 삭막한 땅이다. 실로 그곳은 아무런 수확도 기대할 수 없고 단지 짐승의 울음만이 스산하게 들려오던 두렵고 낯선 오지(奧地)였다.

신 32:10/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의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

실로 크고 두려운 곳이었다(신 1:19). 따라서 하나님의 극진한 사상과 세심한 배려가 없었더라면 이스라엘은 결코 그곳에서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Herxheimer). 기름지고 풍요로운 땅 가나안에로의 입성을 눈앞에 둔 이스라엘 새 세대에서 모세가 주고자 한 교훈의 요지는 바로 이점이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건져내신 당신의 백성을 어떻게 광야에서 돌보시고 훈련하셨는지 실펴보자.


● 자기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
눈동자는 인간의 신체 부위 중 가장 귀중한 것일 뿐 아니라, 가장 쉽게 다칠 수 있는 약한 부위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말은 '최우선적으로 아끼며 아주 조심스럽게 보호한다'(시 17:8;잠 7:2)는 의미이다(Lange, Keil, Wycliffe).

시 17:8/ 나를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 감추사


● 마치 독수리가...새끼를 받으며
"마치 독수리가 그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그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신 32:11)

어미 독수리는 새끼들을 날게 하기 위하여 일부러 둥지에서 새끼들을 떨어뜨려 날게 한다. 그런 후 주위에서 조심스럽게 지켜보다가 새끼들이 힘에 부쳐 떨어질 때는 재빨리 그 강한 날개로 받쳐 결코 새끼들이 해(害)를 당하지 않게 한다. 이런 방법을 반복함으로써 어미 독수리는 새끼를 독수리답게 강하고 튼튼하게 키운다. 모세는 바로 이러한 사실에 비유하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답게 양육하기 위하여 광야에서 사랑과 공의로 훈련시키셨음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출 19:4).


● 그 보금자리를...너풀거리며
새끼들이 보금자리에서 졸고 있을 때 깨워 날게 하려고 어미 독수리가 그 둥우리를 어지럽게 휘젖는 것을 가리킨다(Knobel, Matthew Henry).


이렇게 자신의 백성을 황무지에서 돌보며 광아에서 훈련하시는 신은 없다. 애굽에서 그 백성을 구원하실 때에도 열가지 재앙을 통해 애굽의 신들을 무력화시키고 열방에 여호와같으신 분이 없음을 보여주셨다. 광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 백성을 이처럼 돌보며 인도하시는 분은 없다. 하나님께서 이 모든 과정을 통해 말씀하시는 것은 단 한 가지이다: "여호와께서 홀로...다른 신이 없었도다"

지금까지 이스라엘을 인도하며 보호하신 분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 분 뿐이셨음을 강조하는 말이다(신6:4).

신 6:4-5/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이러한 사실은 지나온 역사를 통해 이스라엘이 친히 목도한 것이기도 하다(29:2, 3;출 19:4). 따라서 이를 알면서도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 다른 신(우상)을 섬긴다면 그것은 무엇으로도 변명할 수 없는 크나큰 죄악이었다.


● 땅의 높은곳을 타고 다니게 하시며
여기서 '땅의 높은 곳'이란 가나안 땅을 가리킨다. 성경에는 종종 가나안에서 애굽으로 '내려간다'는 표현이 나오는데(창 12:10;26:2;42:1-3). 이는 가나안 땅을 높은 곳으로 여기고 있는 히브리인들의 관념에 근거한 것이다. 그리고 '타고다니게 하다'는 말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여 자신의 소유로 삼을 것을 의미한다(Keil, Lange, Wycliffe, Pulpit Commentary). 결국 하나님의 축복 속에 가나안 땅이 이스라엘의 소유가 된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명예롭게 고양(高揚)시키신 일이 아닐 수 없다(사 58:14).

사 58:14/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이니라


● 반석에서 꿀을, 굳은 반석에서 기름을
본절은 가나안 땅의 기름진 상태를 묘사한 말이다<신 11:9>.

신 11:9/ 또 여호와께서 너희의 열조에게 맹세하사 그와 그 후손에게 주리라고 하신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

그런데 그러한 사실을 굳이 본절과 같이 표현하고 있는 까닭은 두 가지 이유에서이다.

(1) 가나안 땅에는 실제로 바위밑이나 그 틈 사이에 야생하는 벌이 많아 반석으로 부터 꿀을 채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2) 자갈이 많은 척박한 땅에서도 포도나무, 감람나무, 무화과나무, 종려수 등과 같이 팔레스틴의 대표적인 유실수(有實樹)라고 할 수 있는 나무들이 잘 자라 기름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Lange, Puplt Commentary). 한편 카일(Keil)은 여기서 더 나아가 이 말은 가장 척박한 곳에서도 가장 귀한 소산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고 보았다(op, cit. p. 474).


● 소의 젖 기름, 양의 젖
'젖 기름'에 해당하는 '헤므아'는 '치즈'나 '버터'와 같이 절반 정도 응고된 우유를 가리킨다. KJV는 이를 '버터'(butter)로, NIV와 RSV는 '응유'(凝乳, curd)로 각기 번역하고 있다.

양의 젖, 여기서 '젖'에 해당하는 '할라브'는 액체 상태 그대로의 우유를 가리킨다.


● 어린 양의 기름
성경 표현상 '기름'(헬레브)은 흔히 '최고', '최상'을 상징한다(민 18:12). 땀 이 말은 '가장 좋은 어린양'을 의미한다(Vitringa, Alexander).

민 18:12/ 그들이 여호와께 드리는 첫 소산 곧 제일 좋은 기름과 제일 좋은 포도주와 곡식을 네게 주었은즉


● 바산 소산의 수양과 염소와...밀
'바산'(Bashan)은 갈릴리 동북쪽, 길르앗 이북에 위치한 고원 지대이다<신 3:1>. 이곳의 땅은 매우 비옥하고 목초지가 많아 가축사역 과밀 경작으로 유명하였다(시 22:12;사 33:9).

시 22:12/  많은 황소가 나를 에워싸며 바산의 힘센 소들이 나를 둘렀으며....


이처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지극정성을 다하녀 돌보시고 인도하셨지만 이스라엘의 반응은 형편없었다. 모세는 그 부분을 지적한다.


● 여수룬(Jeshurun)
"그러한데 여수룬이 살찌매 발로 찼도다 네가 살찌고 부대하고 윤택하매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버리며 자기를 구원하신 반석을 경홀히 여겼도다"(신 32:15)

'예수룬'을 음역(音譯)한 이 말은 이스라엘을 명예롭게 일컫는 시적(詩的) 표현 또는 별명이다(신 33:5, 26;사 44:2). 70인역(LXX)은 이 말을 '사랑받는 자'로도 번역했으나. 델리취(Delitzsch)는 이 말의 어원을 'ישׁר 아솨르' ('옮음', '곧음')로 보고 '옳은 자' 또는 '의로운 자'로 번역했다(민 23:10).

민 23:10/ 야곱의 티끌을 뉘 능히 계산하며 이스라엘 사분지 일을 뉘 능히 계수할꼬 나는 의인의 죽음 같이 죽기를 원하며 나의 종말이 그와 같기를 바라도다 하매

따라서 '여수룬'이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의로운 자가 된 이스라엘'을 의미한다(Pulpit Commentary). 그러나 이처럼 명예롭고 존귀한 명칭이 본절에서는 이스라엘의 사악(邪惡)함을 드러내는 데 사용되었다. 즉 마땅히 그 이름의 뜻답게 의로운 길을 걸으며 살아가야 할 백성들이 오히려 사곡한 배교(背敎)의 길을 걷고 있으므로, 이를 꾸짖기 위해 이스라엘을 풍자적으로 '여수룬'으로 부르고 있는 것이다(Calvin).


● 살찌매 발로 찼도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풍족한 삶을 누리게 되자,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배신하였다는 뜻이다(Luther).


● 경홀히 여겼도다
원뜻은 '시들다, '마르다'이다. 여기서는 하나님을 '가볍게 여겼다'(KJV, lightly esteemed), 또는 '거부했다'(NIV, tejected)는 뜻이다(미 7:6).


"그들이 다른 신으로 그의 질투를 일으키며 가증한 것으로 그의 진노를 격발하였도다"(신 32:16)


● 가증한 것(토에바).
원뜻은 '구역질 나는 것'으로서 곧'우상'을 의미한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와 같은 것들을 얼마나 혐오하시는지를 잘 타나내 준다 그러므로 NIV는 이를 '혐오스러운 우상들'(detestable idols)로 번역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께 제사하지 아니하고 마귀에게 하였으니 곧 그들의 알지 못하던 신, 근래에 일어난 새 신, 너희 열조의 두려워하지 않던 것들이로다"(신 32:17)


● 마귀
이 말에 해당하는 '쉐딤'은 본래 반신 반인 (demigod, 半身半人)이란 뜻을 지닌 앗스르의 수호신(守護神) '쉐두'(Shedu)에서 온 말이다. 그런데 70인역(LXX)과 벌게이트역(Vulgate)은 이를 '귀신'(demons)으로 번역하였다(Keil,Pulpit Commentary). 그러나 여기서 이 말은 신약적 개념의 마귀나 귀신을 뜻하지 아니하고, 어디까지나 '이방 우상들'을 의미할 뿐이다. 그러므로 이와 동일한 말이 시106:37에서는 '사신'(師神)으로도 번역되었다.

시 106:36, 37/ 그 우상들을 섬기므로 그것이 저희에게 올무가 되었도다. 저희가 그 자녀로 사신에게 제사하였도다


● 근래에 일어난 새 신
'근래에'(믹카로브)는 통상 시간적, 장소적 근접 상태를 모두 의미한, 여기서는 시간적 의미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이 근래의 신들은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먼 열조 때 부터 오랬동안 알아왔던 신, 곧 여호와 하나님과는 뚜렷이 대조되는 헛된 신들이다(13:2, 6). 한편 동서 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누구나 종교적 성향(性向)을 갖고 있다(행 17:22). 그리하여 인류 역사 속에서 무수한 새 신들이 생겨났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은 참 신이 아니었으므로, 그것을 섬기던 특정 민족이나 집단의 흥망성쇠와 더불어 명멸(明滅)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는 살아계신 참 신이신 까닭에 역사와 공간을 초월하여 오늘도 영존하시는 것이다(시 102:26, 27).


"너를 낳은 반석은 네가 상관치 아니하고 너를 내신 하나님은 네가 잊었도다"(신 32:18)


● 상관치 아니하고
'괘념하지 아니하다', '무관심하다'(KJV, be unmindful of)란 뜻이다. 이스라엘이 어떻게 하나님을 배신하였는 지(15절) 그 과정을 시사해 주는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보셨다. 그리고 아셨다.

"여호와께서 보시고 미워하셨으니 그 자녀가 그를 격노케 한 연고로다"(신 32:19)


● 여호와께서 보시고
'보다'에 해당하는 '야레'는 '놀라다', '두려워하다'로 번역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본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의 배은 망덕한 범죄 행위에 대하여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극도로 실망하셨다는 의미가 된다.


"여호와께서 보시고 미워하셨으니 그 자녀가 그를 격노케 한 연고로다"(신 32:19)


● 내가 내 얼굴을 숨겨
하나님께서 더이상 상대방과 관계하지 않으시고, 그들에 대한 모든 보호와 긍휼을 중단하실 것이라는 뜻이다.

신 32:20-23/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내 얼굴을 숨겨 그들에게 보이지 않게 하고 그들의 종말의 어떠함을 보리니 그들은 심히 패역한 종류요 무신한 자녀임이로다


● 그들은 심히...패녁한 종류요 무신한 자녀이다
영역본 RSV는 이를 '그들은 완악한 세대이고 신실하지 않은 자녀들이다'(They are a perverse generation, children in whom is no faithfulness)라고 번역하였다. 이는 5절과 흡사한 표현이다. 본절은 이스라엘의 우상 숭배 행위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느끼시는 감정을 인간적인 차원에서 묘사한 구절이다. 즉 이는 한 남편이 음란한 아내에게 자신이 멸시당하고 있음을 알고, 그 역시 다른 여자와 연애를 함으로써 보복하는 질투 심리를 연상시켜 준다. 그러나 하나님의 질투나 보복은 미움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사랑에 근거한 교육적 차원의 징계이다. 이 선고(宣告)는 앗수르, 바벨론, 메대, 바사, 로마등과 같은 이방 민족이 끊임없이 이스라엘을 침략하여 그들을 괴롭힘으로써 역사상 성취되었다. 한편 신약 시대의 사도바울은 이러한 본절을 구속사적 측면에서도 이해하였다. 즉 그는 복음을 거절한 유대인들보다 복음을 받아들인 이방인들을 먼저 교회 안으로 이끄심으로써, 유대인들로 하여금 시기나게 하여 그들도 마침내 복음을 받아들이게 하실 하나님의 구속 심리를 설명하기 위해 본절을 인용하였다(롬 10:19;11:11).


● 질투하시는 하나님
"그들이 하나님이 아닌 자로 나의 질투를 일으키며 그들의 허무한 것으로 나의 진노를 격발하였으니 나도 백성이 되지 아니한 자로 그들의 시기가 나게 하며 우준한 민족으로 그들의 분노를 격발하리로다"(신 32:21)

이러한 표현은 하나님을 의인화시킨 표현 방법으로 신학적으로는 신인 동형 동성론적 표현이다(출 20:5;사 42:8). 하나님은 무엇보다도 우상 숭배하는 자들에 대하여 질투하시는 분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 외에 다른 대상에게 헌신과 애정을 바치는 행위를 하나님께서 결코 용납치 않으신다는 사실을 강조하여 표현한 말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질투'는 고대 근동의 여타 신(神)들처럼 인간의 성공이나 번영 그리고 배반등에 대해 시기하고 암투하는 그러한 질투가 아니라, 자신에게 돌아올 고유한 영광이나 찬송이 자신의 피조물인 다른 생명체나 무생물체에게 엉뚱하게 주어질 때 하나님의 속성상 우러나오는, 당신의 백성을 향한 또 다른 사랑의 표현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즉 하나님은 그의 택한 백성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 백성의 영혼이 헛된 우상에게 빼았길 때 그것을 질투하시는 것이다 (출 34:14;수 24:19). 하나님의 이러한 품성은 우상 숭배하는 행위를 '음행'이라는 말로 정죄한 사실(렘 13:27;겔 16:20;호 9:1)에서도 잘 드러난다.

여기서 "허무한 것"음 우상의 속성을 단적으로 표현한 말이다(신 4:23).


● 백성이 되지 아니한 자
이스라엘측에서 볼 때 정상적인 백성(빈족)으로 볼 수 없는 자들, 곧 하나님을 떠나 인간의 소욕대로 사는 '이방 민족'을 가리킨다(Keil).


● 내 분노의 불
하나님의 분노를 '불'에 비유한 표현은 성경에 자주 타나나다(렘15:14 ; 17:4 ; 애 4:11). 실제로 하나님은 불로써 이스라엘에게 분노를 표하기도 하셨다(민 11:1-3).


● 음부 깊은 곳까지 사르며
"내 분노의 불이 일어나서 음부 깊은 곳까지 사르며 땅의 그 소산을 삼키며 산들의 터도 붙게 하는도다"(신 32:22)

'음부'에 해당하는 '쉐올'은 신약 시대의 '지옥'(하데스)을 의미하는 말이다. 그러나 구약시대 당시에는 '사후(死後)의 세계'에 대한 계시가 명확하지 못했었다. 따라서 구약 성경에서 말하는 '쉐올' 곧 '음부'(陰部)는 선악간을 막론하고 일단 죽은 자들이 가서 거하는 곳으로 여겼던 '지하 세계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창 37:36주석 참조, 그러므로 결국 본절은 분노의 극렬함으로 인해 땅 속까지 미치는 듯한 하나님의 철저한 심판을 의미한다.


여기서 "쌓으며"는 '문지르다', '깨끗이 하다', '면도하다'는 뜻도 지니고 있는 단어이다. 그러므로 칼빈(Calvin)은 이를 '완전히 멸망시키다'는 뜻으로 이해하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영어 성경들은 개역 성경과 마찬가지로 '쌓아 올리다'(heap)로 번역하고 있다(KJV, NIV, RSV, Living).

728x90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