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제사를 드리는 날
모세 율법상 모든 히브리 남자가 일년 3차씩 중앙 성소에 올라가 준수해야 할 절기는 무교절(유월절), 맥추절(오순절, 칠칠절), 수장절(장막절, 초막절)이었다(출 23:14-17).
출 23:14-17/ 너는 매년 삼차 내게 절기를 지킬찌니라 너는 무교병의 절기를 지키라 내가 네게 명한대로 아빕월의 정한 때에 칠일 동안 무교병을 먹을찌니 이는 그 달에 네가 애굽에서 나왔음이라 빈 손으로 내게 보이지 말찌니라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종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 너의 모든 남자는 매년 세번씩 주 여호와께 보일찌니라
연년(年年,미야밈 야미마) - 어근 '욤'( )은 '날'(day) 혹은 '해' (year)를 뜻한다. 따라서 이 말은 '해마다', '매년' 어김없이 준수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이러한 절기가 제정된 까닭은 히브리인들이 항상 하나님을 기억하고 영적인 일에 힘써야 하지만 이처럼 특별한 날을 정하여 지킴으로써 보다 영적 생활의 활력을 꾀하기 위해서였다. 이들 보다 세부적으로 표현하면 (1) 백성들로 하여금 과거 하나님에 의해 구원받았고 (2) 현재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며(3) 앞으로도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갈 것임을 깨닫게 하는 것이 그 목적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역사상 실제로 이런 절기들은 안식년 규례와 더불어 잘 지켜지지 않았고 (왕하 23:22;대하 30:5;느 8:17), 신약시대에 이르러서는 단지 형식에 치우쳐졌다. 그래서 바울은 이러한 절기를 형식적으로 지키지 말도록 가르쳤는데(골 2:16), 그 이유는 이런 절기들은 장래 일의 모형으로서(골 2:17;히 8:5; 10:1) 그리스도를 통하여 완성되었기 때문이었다.
1. 무교병의 절기
이스라엘이 출애굽 직전 급박한 상황하에서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무교병을 구워 먹은 것(12:15-20)을 기념하기 위하여 아빕월 15일부터 21일까지 7일동안 지키는 절기이다.
아빕월
유대 종교력의 제 1월, 그리고 유대 민간력의 제 7월에 해당하는데 후대에는 바벨론식 이름인 '니산월'로 불리웠다. 오늘날의 양력으로는 3,4월에 해당한다. 빈손으로 내게 보이지 말지니라 - 직역하면 '내 앞에 빈 채로(비어서) 나타나지 말라' 이다. 이는 곧 하나님앞에 나아올 때에는 예물을 갖고 오라는 뜻인데, 이와 평행 구절인 신 16:16,17에는 이러한 사실이 분명히 명기되어 있다. 그러나 원문상에 의하면 여기서의 '빈손으로'에 해당하는 '레캄'은 '공허하게', '쓸데없이', '헛되이'등의 뜻을 지닌다. 따라서 '빈손으로'라는 번역보다는 '헛되이'라고 번역함이 더 타당하다. 또한 '보이다'에 해당하는 '라아'는 '나타난다'는 뜻 이외에 '방문하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으므로 '헛되이(쓸데없이) 내 앞에 오지 말라'로 번역함이 자연스럽다. 즉 이는 아무런 의미 없이 하나님의 성소를 찾지 말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 곧 절기의 형식에만 치우쳐 그 근본 정신을 잊지 않도록 깨우치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이러한 계명은 자칫 타성에 젖어 무의미한 신앙 생활을 하기 쉬운 현대인들에게 참된 신앙 생활의 의미를 일깨워 준다(Hitzig).
2. 맥추절
밀 수확을 기념하여 드리는 봄 작물 추수 감사제이다. 무교절 기간 중 첫 수확한 보릿단을 하나님께 바칠 날로부터 제 50일째 되는 날에 지키는 절기이므로 일명 '오순절'(五旬節)이라고도 한다. 이때는 '시완절'로 양력 5, 6월에 해당한다.
3. 수장절
모든 추수가 끝나는 가을에 큰 기쁨으로 지키는 절기이다. 이때는 초막을 짓고 그곳에서 생활하면서 출애굽 이후 이스라엘이 40년간 광야 방랑 생활을 했던 것을 기억하므로 일명 '초막절'(草幕節)이라고도 한다. '디스리월' 15일부터 1주간 지키는데 오늘날 양력으로는 9,10월에 해당한다.
모든 남자(כָּל־זְכוּרְךָ 콜 제쿠르카)
여기서 '제쿠르카'는 '너의 남자들'이란 뜻인데, '기억하다'는 뜻의 '자카르'(זכר)에서 유래한 말로 '기억된 남자', 즉 이스라엘의 인구 조사에 포함되는 20세 이상의 모든 남자를 가리키는 말이다(민1:3). 그러나 절기에 여자와 아이들이 제외된 것은 아니고 모두 함께 참여할 수 있었다(삼상 1:3이하;눅 2:41이하).
희생의 피
본절은 유월절 제물에 대한 규례이다. 따라서 여기서의 '희생의 피'는 '유월절 어린 양의 피'를 가리킨다. 그런데 이 피는 구속사적으로 그리스도의 보혈을 상징한다.
유교병과 함께 드리지 말며
성경에서 누룩은 종종 죄와 악을 상징한다(마 16:6; 고전 5:6;갈 5:9). 따라서 본 규례는 의미상 거룩한 것과 부정한 것을 함께 드리지 말라는 뜻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어떤 제물에서는 유교병이 허락될 뿐만 아니라, 요구되기도 하므로(레 7:13; 23:17) 이 부분의 명확한 의미는 이해하기 어렵다. 아마 누룩이 첨가되면 원래의 모습이 상실되기 때문이라고 추측할 수도 있다.
희생의 기름을 아침까지 남겨 두지 말지니라
여기서 '희생의 기름'이란 어린양을 구워 하나님께 제물로 바칠 때 그것에서부터 흘러 나오는 기름을 가리킨다. 그런뎨 이와 같은 것을 아침까지 남겨 두지 못하도록 한 이유는 성물(聖物)을 경홀히 취급치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이와 관련하여 12:10에서는 남은 것은 소각(燒却)시키시도록 명하고 있다.'으뜸의'라는 뜻의 '로쉬'와 '첫 열매'라는 뜻의 '바카르'가 결합한 말로서 단순한 첫 열매가 아니라 그중에서도 제일 좋은 것을 가리킨다(Knobel, Aben Ezra, Lange). 이것은 앞으로 수확할 모든 소산물을 대표하는 것으로서, 이것을 먼저 하나님의 제단에 바치는 행위는 모든 소산물이 하나님의 것임을 의미하며, 또한 하나님께 대하여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함을 뜻한다(신 6:5). 한편 이러한 규정은 민 18:12,13에 보다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으니 그곳을 참조하라.
여호와의 전
신명기에서는 일반적으로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너희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하신 곳"으로 나와 있는데(신 12:5; 16:2; 26:2 등). 이는 곧 예배장소의 난립을 막고 민족 공동체의 결속을 유지시키기 위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12지파 가운데서 특별히 지정해 주신 이스라엘 내의 유일한 '중앙 성소'를 가리킨다.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으로 삶지 말지니라
염소 새끼를 그 생명의 공급원(供給源)인 어미의 젖에 삶는 행위는 생명의 존엄성을 경멸하는 아주 야만적인 행위이다. 그런데 고대 가나안인들은 맛있는 요리를 만들기 위한 목적으로, 흑은 주술적(呪術的)인 목적으로 이러한 잔인한 방법을 사용 하였었다(Knobel). 지금도 이런 습관이 아랍 세계에는 남아 있다고 한다(Berggren).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모세 율법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 같은 이방인들의 잔인한 관습을 단호히 금지시켰던 것이다. 실로 죄는 작은 것에서부터 출발하여 전체를 물들게 하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고전 5:6;갈 5:9),만일 이스라엘이 이같은 가나안의 사악한 습관을 받아 들이면 그들 역시 점차로 가나안의 죄악에 동화될 위험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본 규례 속에 깃들어 있는 율법 정신은 일상 생활의 세부적인 면까지도 사랑과 긍휼의 정신이 베풀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어미와 새끼를 동일(同日)에 잡지 말지니라"(레 22:28)는 명령 몇 "어미 새와 새끼를 아울러 취하지 말고"(신 22:6)라는 명령도 같은 의미를 지닌 율법이라 할 수 있다.
삼상 1:3-4/ 이 사람이 매년에 자기 성읍에서 나와서 실로에 올라가서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하며 제사를 드렸는데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여호와의 제사장으로 거기 있었더라 엘가나가 제사를 드리는 날에는 제물의 분깃을 그 아내 브닌나와 그 모든 자녀에게 주고...
그런데 이중 엘가나가 택하여 제사를 드린 날은 무교절(유월절)이었던 것 같다(Smith,Fay). 그 이유는 (1)이 세 절기가운데 유월절이 가장 큰 절기였고, (2)또한 이때는 전 가족이 함께 여호와 앞에 나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처럼 1년 1차 유월절에 중앙 성소로 올라가던 관습은 신약 시대에 이르러 보편화된 것 같다(눅 2:41).
눅 2:41-42/ 그 부모가 해마다 유월절을 당하면 예루살렘으로 가더니 예수께서 열 두살 될 때에 저희가 이 절기의 전례를 좇아 올라갔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