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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헤립(Sannacherib)

소소한행복^^ 2024. 7. 31.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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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수르의 통치자(BC 705-681년). 바벨론에 진군하여 BC 702년 그곳의 통치자인 브로닥발라단을 멸망시켰다. 왕하 20:12이하를 보면 브로닥발라단은 유다에게 지원 요청을 하기 위해 사신을 보낸 사람이다. 유다의 히스기야는 반앗수르 연합군을 이끌면서, 애굽에 도움을 요청했다(사 30:1이하).


사 36:1/ 히스기야왕 십 사년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 올라와서 유다 모든 견고한 성을 쳐서 취하니라

산헤립(Sannacherib)의 선임 왕인 사르곤 2세(Sargon,II)는 B.C.722년에서 705년까지 약 17년 내지 18년간을 통치했다. 그리고 산헤립은 그 뒤를 이어 B.C. 705년에 즉위했다. 그런데 앗수르의 기록에 의하면 산헤립은 그의 통치 제 4년에 히스기야에 대한 원정을 실시하였다고 한다(Pawlinson). 따라서 이때(즉 히스기야 14년)는 B.C. 701년 경이 되며 그렇다면 히스기야의 즉위 연대는 B.C. 715년 경이 된다.

산헤립의 1차 원정 목적은 애굽을 징벌하기 위한 것이었다(Josehpus, Keil, Bahr). 그런데 유다의 히스기야가 아하스 때와는 다르게 조공을 거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블레셋의 가사 지방을 공격함으로써, 블레셋과 동맹하여 애굽을 치려던 계획에 많은 차질을 주었다(7,8절). 때문에 산헤립은 먼저 유다공략, 장애물을 제거하려한 것이다. 한편 산헤립의 비문(碑文) 기록에 따르면 이때 산헤립이 히스기야로부터 탈취한 성은 모두 46개로 욥바, 에그론, 딥나, 라기스 등 중요한 요새를 전부 탈취하였다고 한다(Grid). 사실 미1:10-16에도 이러한 성들이 히스기야 시대에 탈취되었음이 언급되어 있다.

BC 701년 산헤립은 그 연합군에 대항하는 무력 행동에 들어가 시돈과 아바드, 비블로스, 벧암몬, 모압, 에돔 등의 왕들을 항복시켰으나, 아스글론과 같은 성읍들은 약탈하지 않았다.
  
수많은 유다의 도성과 46개의 성읍들을 멸망시켰고, 거기서 200,150명을 포로로 잡아갔다. 또 라기스를 치고, 자신의 심복들을 보내 예루살렘을 내어 줄 것을 요구했다(대하 32:9). 그의 속셈은 히스기야를 새장 안에 갇힌 새처럼 예루살렘에 감금하고 공물을 요구하는 것이었으나(참고. 왕하 18:13이하), 군대를 동원해 예루살렘을 멸망시킨다거나 약탈하겠다는 언급은 하지 않았다(왕하 19:32이하).
    
더 나아가 그의 바벨론 진군은 BC 689년에 그 도시를 약탈함으로 결판나게 되었다. 그는 본국에서, 화려한 궁전을 건축하여 니느웨를 재건했는데, 넓은 영토에 관개 수로 공사를 했을 정도이다. 그 후 그는 신에게 경배하는 동안 두 아들에게 암살당했고, 또 다른 아들인 에살핫돈이 왕위를 차지하게 되었다(왕하 19:37). 그가 팔레스틴을 정복했던 시기와 성경에 기록된 그의 죽음 사이에는 시간 차이가 없는데, 그 사실 자체가 같은 이름의 또 다른 인물이 존재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어떤 학자들이 제시한 그의 후기 팔레스틴 정복에 대한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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