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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야(Abia)왕부터 요시야(Josiah)왕까지

by 소소한행복^^ 2023. 10.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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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야 - 남왕국 유다의 제 2대 왕인 아비야(Abia)는 왕상 14:31;15:1, 7, 8 등에서는 아비얌(Abijam)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는 3년간 예루살렘에서 통치하였다(B.C.913-910). 그런데 그 또한 부친 르호보암의 죄를 답습하였고 여호와 앞에서 온전치 못하였다(왕상 15:3). 그렇지만 그는 한편으로 북 이스라엘과의 전투에 있어서 여호와를 의지하는 신앙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그 전투에서 여호와를 의지하는 가운데 북 이스라엘의 80만 대군을 40만의 소수 병력으로 패퇴시켰다(대하 13:1-22).


아사 - 유다의 3대 왕 아사(Asa, B.C.910-869)는 전임 두 왕과는 달리 우상을 파괴하고 종교 개혁을 단행하였으며(대하 14:3-5), 하나님 보시기에 선과 정의를 행하였다(대하 14:2). 그리하여 그의 통치 초기에는 전쟁이 없었다. 또한 그는 여호와를 의지하고 구스군을 무찔렀으며(대하 14:9-15), 북 이스라엘 왕 바아사를 다메섹과 동맹하여 무찌르기도 하였다(왕상 15:16-22).


여호사밧(Jehoshaphat)

B.C. 871-847년까지 25년을 통치한 여호사밧(Jehoshaphat)은 다윗 왕을 본받아 여호와를 힘써 섬겼으며 온 민족을 여호와께 돌아오게 하는 데 큰 공헌을 하였다(대하 17:3-6;19:3, 4).

대하 17:3-6/ 여호와께서 여호사밧과 함께하셨으니 이는 저가 그 조상 다윗의 처음 길로 행하여 바알들에게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그 부친의 하나님께 구하며 그 계명을 행하고 이스라엘의 행위를 좇지 아니하였음이라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나라를 그 손에서 견고하게 하시매 유다 무리가 여호사밧에게 예물을 드렸으므로 저가 부귀와 영광이 극하였더라 6 저가 전심으로 여호와의 도를 행하여 산당과 아세라 목상들도 유다에서 제하였더라


그러나 그는 지금까지 역대 왕들이 펼쳐 온 대 이스라엘 적대 정책에서 벗어나 화해 정책을 폈으니 그 일환으로 아합과 이세벨의 딸 아달랴(Ath-aliah)를 자부(子婦)로 맞아 들였다(왕하 8:16-18).

왕하 8:16-18/ 이스라엘 왕 아합의 아들 요람 제 오년에 유다 왕 여호사밧이 오히려 위에 있을 때에 그 아들 여호람이 왕이 되니라 여호람이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삼십 이세라 예루살렘에서 팔년을 치리하니라 저가 이스라엘 왕들의 길로 행하여 아합의 집과 같이 하였으니 이는 아합의 딸이 그 아내가 되었음이라 저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나


요람 - 이세벨의 딸 아달랴의 남편인 요람(Joram)은 부친과는 정반대로 백성들에게 우상을 강요하고 악정(惡政)을 펼쳤다(왕하 8:16-24;대하 21:1-20). 그 결과 그는 하나님의 저주로 죽었는데 그의 통치 기간은 8년이었다(B.C.853-841).


아하시야 - 그는 사악한 모친 아달랴의 섭정하에서 이스라엘과 군사 협력 관계를 맺었으며 아합의 집같이 악을 행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의 진노를 당하였는데 곧 재위 1년여만(B.C.841)에 예후의 손에 죽고 말았다(왕하 8:25-29;대하 22:1-9). 한편, 아하시야(Ahaziah) 사후(死後) 모친 아달랴는 유다 왕가(王家)의 씨를 진멸하였다. 그러나 그 와중에서도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가 살아남아 다윗의 왕위(王位)를 계승할 수 있었다(대하 22:10-12). 한편 아달랴의 유다 통치 기간은 6년이었다(B.C.841-835).


요아스 - 7세에 왕위에 올라 40년간 통치한 요아스(Joash, B.C.835-796)는 제사장 여호야다의 도움으로 선정을 했으나(대하 24:4-14), 여호야다가 죽은 이후에는 다시금우상 숭배를 고집하고 악정을 펴다가 신하들에 의해 죽임 당했다(대하 24:15-27).


아마샤 - 25세에 즉위하여 29년간을 통치한 아마샤(Amaziah, B.C.796-767)는 에돔을 정벌하기도 했으나 훗날 교만해져 우상을 숭배하고 선지자를 배척했다(왕하 14:1-22;대하 25:1-28).


아사랴 - 그는 일명 웃시야(Uzziah)라고도 불리운다(대하 26:1-23). 웃시야는 왕의공식적 칭호(throne name)이며 아사랴(Azariah)는 사적인 이름이다(Payne, Myers). 그는 아마샤와 같이 통치 초기에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후에 교만해져서 월권(越權)으로 제사장의 직무를 행하다가 문둥병으로 죽었다(왕하 15:5).


요담 - 그는 하나님 앞에서 정직히 행한 왕 중의 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가 산당들을 제하지 아니한 탓에 당시 백성들은 여전히 산당에서 분향하며 제사할 수 있었다(왕하 15:32-38;대하 27:1-9).


아하스 - 그는 한 마디로 광적인 우상 숭배자였다. 즉 아하스(Ahaz)는 바알과 몰렉을 숭배하며 자신의 자녀를 불살라 우상에게 바친 자였다(왕하 16:3). 한편 그의 통치기간 동안(B.C.735-716)에 유다는 아람 왕 르신, 이스라엘 왕 베가, 에돔과 블레셋 등의 침공을 받았다(왕하 16:1-20;대하 28:1-27).


히스기야 - B.C. 728년부터 B.C. 687년까지 통치한 히스기야(Hezekiah)의 이름의 뜻은 '여호와께서 힘을 주셨다'이다. 그는 우상을 파괴하고 예루살렘 성전 문을 다시 여는 등 대대적인 종교 개혁을 단행하였다. 또한 그는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체계화했고 십일조 제도도 다시 제정하였다. 이외에 정치, 군사 면에서도 그는 강력한 지도력을 행사하여 앗수르의 대군을 격파하는 등 많은 업적을 남기었다(왕하 18:1-20:21;대하 29:1-32:33).


므낫세 -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Manasseh)는 히스기야 왕과는 정반대로 부친이 파괴한 우상을 다시 건축하며 조부(祖父) 아하스 왕과 같이(대하 28:3) 인신(人身) 제사를 행하였다. 그러나 앗수르가 B.C. 650년 경에 유다를 침공하여 므낫세를 포로로 잡아갔을 때 그는 여호와의 징계하심을 깨닫고 회개하였다(왕하 21:1-18;대하 33:1--20). 그의 통치 기간은 B.C. 697-642년이다.


아몬 - 므낫세의 아들인 아몬(Amon) 역시 므낫세와 마찬가지로 악을 행하였다. 그러나 므낫세는 회개한 반면, 그는 끝까지 회개하지 않았다는 데에 차이점이 있다(왕하21:19-26;대하 33:21-25). 아몬의 통치 기간은 2년이었는데(B.C.642-640) 불행히도 그는 자신의 신하에게 살해되었다(왕하 21:23).


요시야 - 8세에 즉위한 요시야(Josiah)는 즉위한 지 12년과 18년에 우상을 제하고 예루살렘 성전을 수축하는 등 일대 종교 개혁을 단행하였다(왕하 22:1-23:30;대하34:1-35:27). 한편 그의 이름은 '여호와께서 후원해 주시다', 또는 '여호와께서 고치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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