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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냐민(Benjamin) , 베냐민 지파

by 소소한행복^^ 2024. 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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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죽기에 임하여 그 혼이 떠나려할 때에 아들의 이름은 베노니라 불렀으나 그 아비가 그를 베냐민이라 불렀더라 라헬이 죽으매 에브랏 곧 베들레헴 길에 장사되었고"(창 35:18-19)


벤냐민(בּנימין)'은 '오른손의 아들', '행운아'란 뜻이다. 야곱의 막내 아들로, 라헬이 그를 낳다가 죽자 '내 슬픔의 아들'이라 부르기도 했다(창 35:18).

벤냐민은 '아들'을 가리키는 '벤(בּן)'과 '오른손(ימין)'을 뜻하는 '야민'이 합쳐진 말로 '오른손의 아들'이란 뜻이다. 성경에서 오른손 또는 오른편은 '총애'와 '탁월함'을 의미하므로 (사 41장. 오른손과 오른편의 성경적 의미) 결국 이 이름은 '베노니('나의 슬픔(고통)의 아들')'와는 상반된 긍정적이고 희망미를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베노니'의 이름을 개명(改名)한 이유는 (1) 아내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을 잊기 위해서와 (2) 어미 없는 세상을 의기소침 않고 힘차게 살기를 소망하는 아비의 심정을 나타내기 위해, 또한 (3) 마침내 완전 수(數)인 12 아들이 채워짐으로써 고통을 기쁨으로 보상받았기 때문 등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한편, 베노니(בּן־אוני, 벤 오니). '고통', '슬픔'을 뜻하는 '아웬(און)'에 '아들' '벤(בּן)'이 합쳐진 말로 '나의 슬픔(고통)의 아들'이란 뜻이다.

요셉 출산이후 또 다른 아들을 갖기를 그처럼 갈망했던(창30:34) 라헬이 그 꿈이 이뤄지는 기쁨의 순간을 눈앞에 둔 채 심한 산고(産苦)로 인해 자신이 죽을 것을 예감하여 지어준 애조(哀調) 띤 이름이다.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슬픔도 컸지만 여행 중에 있는 야곱은 어느 때 까지 슬퍼할 수만은 없어 라헬을 그녀가 죽은 곳 근처에 묻었다. 즉 팔레스틴은 기후상 시신이 곧 부패되므로 가족의 장지인 헤브론(25:9;35:29) 까지 시신을 옮기지 못하고 가까운 곳에 묻었던 것이다.

히브리인들은 특별히 기억할 만한 사건과 장소를 영구히 기념키 위해 그 주변의 돌로 비석을 세우는 것이 관례였다(28:18). 따라서 야곱이 라헬의 묘에 묘비를 세운 것은 그가 그녀를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단편적으로 보여 준 것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지금 까지'는 모세의 때  까지를 의미하며. 라헬의 묘 위치는 사무엘 때 까지 알려져 있었으나(삼상 10:2) 지금은 확실치 않다. 다만 오늘날 라헬의 무덤이라고 전해 내려오는 작은 무덤이 베들레헴에 있다.


벤냐민은 요셉이 애굽에 팔려간 후, 그는 아버지의 귀염둥이가 되었다.

• 베냐민의 후손들

수리아의 마리에서 발견된 BC  18세기의 문서에도 같은 이름이 나오지만, 확실히 성경에 나오는 지파와 같다고 할 수는 없다.

베냐민 지파는 에브라임 산지와 유다 고지 사이를 가로지르는 좁고 긴 땅을 차지했다.


베냐민 자신은 '물어 뜯는 이리'라 칭함을 받게 되었고(창 49:27), 그의 지파는 전쟁에서 용맹과 기술이 뛰어남을 인정받았는데, 특히 왼손으로 물맷돌을 던지는 것으로 그 명성을 얻었다(삿 20:15,16).

창 49:2/ 베냐민은 물어 뜯는 이리라 아침에는 빼앗은 것을 먹고 저녁에는 움킨 것을 나누리로다

삿 20:15-16/ 그 때에 성읍들에서 나온 베냐민 자손의 수는 칼을 빼는 자가 모두 이만 육천이요 그 외에 기브아 거민중 택한 자가 칠백인데 이 모든 백성 중에서 택한 칠백명은 다 왼손잡이라 물매로 돌을 던지면 호리도 틀림이 없는 자더라


왼손잡이 - 원어 '이쉬 이테르 야드 예미노'는 '오른 손을 쓰지 못하는 자'란 뜻이다. 때문에 혹자는 이를 오른손을 전혀 쓰지 못하는 불구자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70인역(LXX)을 이를 '암포테로덱씨오스', 즉 '양손잡이'로 번역하고 있다. 따라서 이는 오른손을 사용하지 못하는 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 비해 왼손이 발달된 자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아야한다. 이 같은 사실은 베냐민 지파중에 왼손잡이가 700명이나 있었던 점(20:16)에 의해서도 뒷받침된다(Lange, Matthew Henry, Keil & Delitzsch Commentary, Vol. II, pp. 295 f).


베냐민 지파는 사울에게 충성을 다했으나, 예루살이 수도가 되었을 때, 유다에 속하고 말았다.
  
느헤미야의 회복기 이후에는 개인적인 족보에서만 이 두 지파가 구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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