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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해 앞에서

by 소소한행복^^ 2020. 8.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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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인생은 바다와 같다"라고 말을 하곤 한다. 우리에게 풍성한 먹거리를 제공하고, 여가와 즐거움을 주는 곳이지만 풍랑이 일면 우리를 삼키고도 남을 만큼 무서운 존재로 돌변한다. 우리의 인생이 그렇지 않은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왔건만 다다른 곳은 검푸르게 넘실거리는 홍해이다. 좌우에 높은 언덕이 가로막고 뒤엔 바로가 이끄는 전차부대가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점점 다가왔다.

사면초가의 문제 앞에서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1) 두려워 말고 -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사랑과 신앙을 회복하라는 의미다(요일 4:18). 왜냐하면 지금과 같은 상황하에서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했을 때 나타나는 첫 반응은 두려움이기 때문이다(10절).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오히려 두려움을 내쫓습니다. 두려움은 벌받을 일을 생각할 때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는 것은 아직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증거입니다."(요한일서 4:18)


2) 가만히 서서 - 문자적으로 '너희 자리를 지키라', '그자리에 꿋꿋이 서있으라'는 뜻이다. 비록 현상황이 절박하다 하더라도 다급해하거나 결코 좌절치 말고 조용히 그 상황을 맞이하라는 명령이다. 결국 이는 하나님을 온전히 신앙하라는 준엄하나 지시이다.


3) 잠잠히- '혀를 물다', '침묵을 지키다'는 뜻이다. 즉 더이상 불평하는 말을 하지 말고 조용히 기다리라는 뜻이다. 이는 곧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주권적인 단독 사역을 묘사한 표현이다. 최선을 다한 후 인간으로서 더이상 어찌할 수 없는 극한 상황에서 마지막 한 가지 더 필요한 것은 그 상황을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는 '믿음'이다.


4) 구원을 보라 - 넘실대는 홍해의 바닷물이나 중무장한 애굽 군대를 바라보지 말고 위로부터 오시는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소망하라는 뜻이다. 한편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구원받은 것은 장차 신자들이 죄에서 구원 받을 것을 예표한다.


왜냐하면,

"여호와 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시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신앙(기독교)는 결코 죽은 우상을 섬기는 헛되고 무능한 종교가 아니라, 구체적인 성도의 삶의 정황 속에서 능동적으로 역사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구원의 종교이다.


그러므로,

"앞으로 나가야 한다" - 하나님은 마음의 신뢰뿐 아니라 행동을 통한 그 믿음의 실천을 요구하신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헛될 뿐이기 때문이다(약 2:17). 한편 여기서 '앞으로 나가게'의 히브리어 '이사우'( )는 ' 장막 말뚝을 뽑아 챙긴 후 곧장 전진해 가다'는 뜻이다. 즉 장막에 머물러 있으면서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기다리지 말고, 비록 위험스러우나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홍해 쪽으로 발길을 돌리라는 뜻이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삼키려던 문제가 오히려 '좌우에 벽이 되'어 우리를 보호하는 은혜의 수단이 되게 하실 것이다. 여기서 '벽'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호마'(חומה)는 '담이나 뚝'을 가리킨다. 이것은 보호나 방어를 의미하는 말로서 곧 바닷물의 좌우 벽은 이스라엘이 지나갈 수 있도록 그들의 보호 벽이 되었다는 말이다. 이처럼 흉융한 파도가 오히려 이스라엘을 감싸주는 보호벽이 되었다는 사실은 사나운 물결도(시 78:13), 그리고 맹력하나 불꽃도(단 3:19-27)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택한 자의 머리털 하나 침범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암시한다(마 10:29-31).


반면,

"바로의 군대는 바다 가운데로 들어 오는지라" - 히브리서 저자는 이 사실에 대하여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으며"(히 11:29)라고 기록하였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다를 통과한 것은 하나님의 약속(명령)이며 또한 그에 대한 그들의 믿음이었다. 그러나 애굽 사람들이 바다 속에 뛰어든 것은 하나님의 약속이나 그에 대한 그들의 믿음이 없는 그야말로 무모한 행동이었다. 이런 과욕에 찬 무모한 행동은 하나님의 능력을 시험하는 것이었으며, 그 결과 그들에게는 파멸이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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