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참으로 아프고 힘든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누구보다 새해의 아침을 기다렸습니다. 붙잡으려할 땐 번개처럼 달아나고, 기달릴 때는 왜이리 더디 오는지요.
그 기다림의 시간 속에서,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것이니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되새김질 하며 그 의미를 반추해 보았습니다.
새 포도주가 '주께서 우리 가운데 행하실 새일'이라면, 그것을 담을 새 부대는 '우리가 준비해야만 하는 새 마음, 새로운 자세와 태도'가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새 일을 행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지만,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아야 할 자들은 '너희'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이사야 43:18).
"기억하지 말고 생각하지 말라"는 말씀의 의미는 단순히 망각이라는 무덤에 과거의 실패와 죄, 아픈 감정과 상처등을 묻으라는 말씀은 아닌 듯 합니다. 시간이라는 피난처에 외면하고 싶은 나의 모나고 못난 삶의 흔적과 기억들을 저장해 두라는 말씀도 아닐 것입니다. 개 꼬리를 아무리 오래 간직하여도 족제비 꼬리털이 될 수는 없듯이, 그저 시간이 흐른다고 헌 부대가 저절로 새 부대가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어떻게 그 시간을 활용하여 옛적 일을 처리하느냐가 관건일 것입니다.
그것은 저에게는 '외면'이 아닌, 오히려 '직면하라'는 말씀으로 다가옵니다.
"문제에 직면하고
아픔에 직면하고
쓴소리에 직면하고
싫은 사람과 직면하고
껄끄러움에 직면하고
부담에 직면하고
과거의 실패와 직면하고
상처와 직면하고
...
그런 것들과 직면해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이르시되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창 31:3)
야곱인들 그토록 그립던 산하, 보고싶었던 아버지와 어머니를 만나고 싶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야곱이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지난 과거와 직면하고 껄끄러운 형과 대면해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야곱이 고향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지 형 에서가 칼 날을 곧게 세우고 야곱에게 다가옵니다.
그 때 야곱이 떠올여야 하는 것은 단 한가지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라는 약속입니다.
야곱은 에서를 직면하기 전 얍복강에서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구했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하신 말씀은 브니엘(하나님의 얼굴)에서 확연하게 실현되었습니다. 비록 넙다리뼈가 부러져 절룩거렸지만, 더이상 외면하고 도망치지 않고 형과 과거와 마주대하여 설 수 있었습니다. 그 때에 성경은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습니다."(창 32:31)라고 증언합니다. 야곱의 새해가 밝은 것입니다.
직면하기 전까지는 결코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없습니다. 직면하고 전까지는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갈 수 없습니다. 직면하기 전까지는 결코 새로운 해를 맞을 수 없다고 야곱의 생애가 가르쳐 줍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의 죽음과 직면하기 전 하나님 아버지와 먼저 겟세마네 동산에서 직면했기에 십자가와 직면할 수 있었고, 부활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주님,
자꾸만 회피하려는 마음과 직면하고 싸우겠습니다.
주가 필요하다는 절실함에 직면하고 새아침이 밝기 전에 어제의 모든 잘못들과 먼저 직면하고, 그것들과 화해하고, 작별하고, 그리고 내일을 맞게 하소서.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하신 주님 감사합니다.
새해엔,
주의 임재에 더 직면하고
주의 음성에 더 직면하고
주님의 간절한 소망에 직면하고
성소를 지나 지성소에 나아가는 신앙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성경과 오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술과 술취함에 대한 성경적 입장 (0) | 2020.04.24 |
---|---|
텃밭에서 부르는 생명의 찬가 (0) | 2020.04.08 |
눈 빛만 바꿔도 (0) | 2020.04.01 |
맞서거나 맡기거나 (0) | 2020.04.01 |
기쁨은 하늘나라의 빼놓을 수 없는 사업이다. (0) | 2020.04.0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