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부장이란?
본래 백부장이란 백 명의 병사를 지휘하는 하급 장교를 말한다. 요세푸스(Josephus)에 의하면 본문에 언급된 백부장의 군대는 여러 국적을 가진 외국인들로 구성되었고 헤롯 안디바의 봉급을 받고 있었다고 한다. 또 폴리비우스(Polybius)는 백부장의 지위에 대해서 말하기를 지휘할 능력이 있는 사람으로서 그 군대에서 가장 우수한 사람이 백부장의 지위에 선택되었다고 진술한다. 따라서 이 직책에 있는 사람에게는 분명히 성실성과 지도력을 겸비한 인격이 요구되었다. 이것은 신약성경에 소개된 백부장들이 모두 인격자였다는 것과 일치한다(23:47;행 10:22;22:26;23:17;24:23). 이 백부장이 반드시 이방인이라는 직접적인 표현은 없지만 유대인의 장로들을 예수께 보내었던 것(3절)과 예수의 말씀(9절)이 그것을 간접적으로 입증한다.
"어떤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더니 예수의 소문을 듣고 유대인의 장로 몇을 보내어 오셔서 그 종을 구원하시기를 청한지라
예수께서 들으시고 저를 기이히 여겨 돌이키사 좇는 무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하시더라!"(눅 7:2-3, 9)
• 백부장의 태도와 행위
1. 사랑하는 종
마태는 '아들'이라고도 번역될 수 있는 '파이스'(παῖς '하인')로 기록하고 있는데 비하여(마 8:6) 누가는 분명히 '둘로스'(δοῦλος '종')라고 표현한다. 이 단어는 '종' 또는 '노예'를 가리키는 말로 생명에 대한 결정권이 자신에게 없고 주인의 뜻에 자신을 전적으로 맡기는 사람을 가리킨다. 그러나 종과 상전이라는 신분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유대 사회의 지도층에 속한 장로를 손수 찾아가 예수께 부탁을 올릴것을 간구한 사실은 이 백부장의 종에 대한 강한 애정을 반영한다. 아울러 이 종이 그의 상전인 이 백부장을 얼마나 성심 성의껏 섬기며 봉사했는가를 반증하기도 한다.
2. 유대인의 장로 몇을 보내어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하여 가로되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와하나이다"(마 8:5-6)
마태는 '백부장이 나아와'라고 말한다(마 8:5). 반면 여기에는 백부장이 나온 것이 아니라 백부장이 유대인의 장로들을 보낸 것으로 말한다. 이것은 서로 상반된 것처럼 보이지만 마태는 요약적인 내용만을 기록하고 있는 반면에 누가는 일어난 일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오는 차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가 유대인의 장로들을 택한 이유는 자신은 이방인이었기 때문에 유대인 지도자들이 예수와 잘 통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오셔서...구원하시기를 청한지라", '구원하시기를'(디아소세)이란 폭풍같은 상황 속에서도 안전하게 구원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 말에는 그 종의 생명이 몹시 위험한 지경에 이르러 빨리 손을 쓰지 않으면 곧 죽을 것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지금 백부장이 구원을 요청하는것은 예수께서 죽어가는 자신의 종을 구원하여 건강하게 소생시킬 수 있다는 확신을 전제로 한 것이다. 여기에 백부장의 겸손하면서도 확고한 믿음이 있다. 그는 스스로를 이방 죄인으로 여긴터라 감히 예수께 직접 나아가 간구하는 것조차 부담스러워했음이 분명하다.
"이에...간절히 구하여 가로되", 당시 유대인들은 이방인과의 접촉을 꺼리며 그들과의 접촉을 부정한 것으로서 간주했다. 특히나 자신의 나라를 점령하고 있는 로마인들과의 접촉은 더더욱 기피했었다. 그런데 유대 사회에서 지도적 위치에 있는 장로들이 이 백부장에게 매우 호의적(好意的)이었다는 사실에서 유추해 보건대 이 백부장이 평소 유대인들에게 베푼 선행이 엄청났을 것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유대인의 장로들은 자기들에게 은혜를 베푼 사람을 위해서 예수께 나아가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으며 또한 예수께 가서도 간절히 간청하였다. '간절히'란 원어상으로 보건대 서두름을 의미하는 말에서 나왔는데 시간에 쫓기는 상태에서 열렬히 무엇을 한다는 의미가 있다. 그러므로 이는 장로들이 언제 죽을지 모르는 백부장의 종을 위해 시간을 다투어 예수께 열심히 간청한 것을 나타낸다. 또한 '구하여'에 해당하는 헬라어 동사 '파레칼룬(παρεκάλουν)'은 미완료형으로서 간구하기를 시작한 후 계속하였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장로들의 간구가 단순히 한 두 번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예수의 응답이 있을 때까지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이루어졌음을 나타낸다.
3. 회당을 건축함
"저가" - 이 구절은 앞에서 장로들이 백부장을 '합당하다'고 말한 이유를 설명한다. 원래는 '가르'(γὰρ, '왜냐하면')가 들어 있으나 개역성경에는 생략되어 있다. '저가'(아우토스, αὐτός)는 문법적으로 '그 자신이(himself)'란 의미다. 따라서 이 말은 회당을 짓는데 있어서 그가 완전히 그 자신의 재산으로 지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4. 유대인을 사랑함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 당시 로마 군관들은 일반적으로 교만하고 백성을 압제하여 재물을 탈취했다. 그러나 이 백부장은 유대인에게 호의를 베풀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전하는 자료에 따르면 이 백부장은 유대 민족을 사랑하고 이들을 위해 회당을 지어 주었으며 또 유대인들에게 많은 선행을 베풀었다고 한다. 따라서 장로들은 백부장을 위해 그의 종을 살려주어도 될 만한 자격과 가치가 그에게 충분히 있음을 예수께 강조하였다. 백부장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마음으로 회당을 지었는지 아니면 당시의 종교적인 관습을 따라서 지도자로서 회당을 지어 희사(喜捨)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이 백부장의 태도로 보아 일단의 신앙을 지닌 것으로 보인다.
"주여" - 이는 단순한 호칭의 의미보다는 전체적인 문맥을 고려할 때(9절) 신앙 고백적 측면까지 내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수고하시지 마옵소서" - 백부장은 경건한 유대인이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는 것은 큰 거리낌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예수께서 자신의 집에 들어오는 것을 꺼려한 더 근본적인 이유는 그가 비록 예수를 만나본 적이 없었지만 그의 위대하신 능력을 이미 들어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위대하신 분이 자기 집에 들어오는 것을 감당치 못할것 같은 느낌 때문이었다. 이것은 그의 겸손한 신앙심을 표현해 주는 말이다. 또한 그는 예수의 놀라운 신적 권능을 확신했기 때문에 예수께서 굳이 몸소 집을방문해 주시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종의 병이 나을 것이라고 믿었다.
• 백부장의 믿음
1. 말씀만 하사
이를 직역하면 '한 마디 말씀만 하시면'이다. 그는 예수의 말씀의 능력을 믿은 것이다. 백부장의 믿음은 어떤 신체적인 접촉을 한다거나 환상을 보는 따위의 외적 증거를 넘어선 것이었다. 백부장은 종으로 하여금 예수의 옷자락을 만지도록 하지도 않았고, 예수의 몸이 닿은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요구하지도 않았다. 그는 다만 예수의 말씀 한 마디면 족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사실 그의 믿음대로 예수는 한 마디 말씀으로써 죽은 자를 살리기도 하시고(11-16절) 풍랑을 잔잔케도 하셨다(8:22-25). 예수의 말씀은 태초에 무(無)의 상태로부터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권능의 말씀과 동일한 것이었다(창 1:1-31).
2.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2절에서는 '종'(둘로스)으로 표현되었으나 여기서는 '하인'(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파이스'는 '아들'을 지칭하기도함)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는 장로들과는 달리 백부장이 그 종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었으며 심지어는 그 종을 아들과 같이 여겼음을 나타낸다. 따라서 백부장은 아들과 같은 하인이 죽어가는 것을 볼 수가 없어서 예수께 간절히 간청하였던 것이다.
3. 저도 남의 사람이요
원문에는 '가르'(γὰρ, '왜냐하면')가 있어서 백부장이 예수께서 말씀으로만 그 종을 치료하시리라고 생각하게 된 뚜렷한 이유를 드러낸다.
"남의...사람이요" - 백부장은 자신의 위치를 설명함에 있어서 자신의 부하를 내세워 자신의 위치를 과시하고 우월성을 강조할 수 있었으나 오히려 자신이 남의 수하(under authority, NIV)에 있음을 먼저 드러내는 겸손함을 취하고 있다.
4. 이더러...하나이다
백부장은 자신의 군대 생활의 경험을 예로 들어 실제적으로 설명한다. 그는 지금까지 명령만 하면 자신이 직접 행동하지 않아도 그 명령에 따라 원하는 것이 그대로 실행되어지는 것을 경험했다. 따라서 그는 예수께서도 어떤 권위로 말씀만하시면 그것이 능히 이루어지리라는 것을 확신했던 것이다. 어쩌면 이 백부장은 유대교에 익숙하였던 관계로, 하나님의 명령에 일사불란(一絲不亂)하게 순종했던 천군 천사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 말을 하였는지 모른다(왕하 6:17;시 34:7;68:17;103: 20;마 26:53). 어쨌든 군대의 상하 관계를 잘 알고 있었던 그는 신적권위를 가진 예수와 연약한 인생인 자신이 영적상하 관계에 있음을 분명히 깨닫고 있었으며, 권위 아래에 있는 자신이 그 수하 사람들을 복종케 할 수 있다면 하물며 신적 권세를 가진 예수께서 못하실 일이 없으리라고 굳게 믿었던 것이다. 실제로 예수는 하늘과 땅에 속한 권세를 지닌 주권자이시다(요 17:2).
• 예수께서...기이히 여기심
예수께서 이상히 여기신 것은 오직 두 번 기록되었는데 한 번은 믿음이 있음을 보신 후였고, 또 한 번은 믿음이 없음을 보신 후였다(막 6:6). 예수께서 기이히 여기실 정도로 백부장의 믿음이 위대했던 것은 앞에서도 지적되었다시피 다음 세 가지 사실을 통해 분명히 드러난다.
(1)그의 겸손함(humility)이다.
(2)예수의 말씀의 권능을 확신한 사실이다. 이와 유사한 예는 요 4:50에서도 발견된다.
(3)예수의 신적인 신분에 관한 남다른 인식을 갖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 사실은 그의 겸손함이나 말씀의 권능 확신 등에 대한 기본적인 근거라 할 수 있다.
• 이스라엘...만나보지 못하였노라
이 말은 이스라엘에 대한 비탄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미 믿음을 찾으셨기 때문이다(5:20;마 8:2,3). 예수께서 놀라신 것은 그가 비록 이방인이지만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능가하는 위대한 믿음을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헬라어 원문 중에 쓰인 부사 '우데(οὔτε)'는'...조차도...않다'는 뜻으로서, 하나님의 계시인 구약성경을 늘상 접하며 여호와 신앙에 삶의 기반을 두는 선민으로서의 특권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이 이방인만한 믿음을 가진 이가 아직 유대인 중에 발견되지 않은 사실을 지적하시는 예수의 책망을 떠올리게 한다. 아울러 이는 선민들조차 갖지 못한 귀한 믿음을 이방인 백부장이 지녔던 사실을 한층 강조해 준다.
• 백부장의 믿음의 결과: 집으로 돌아가...강건하여졌더라
마태는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가라 네 믿은대로 될지어다"(마 8:13)라고 말씀하신 것으로 기록한다. 그러나 누가는 예수께서 아무 말씀도하지 않고 다만 보냄을 받았던 사람들이 집에 돌아가 보니 종이 이미 건강해진 것을 보았다고 한다. 이는 치료가 즉각적으로 이루어짐으로 말미암아 그 종이 죽음의 문턱에까지 이를 정도로 심각했던 중풍병으로부터 해방되었을 뿐만 아니라 정상인처럼 기력을 완전히 회복하였음을 가리킨다. 이러한 이적적 치료 행위를 통해서 예수의 메시야성은 밝히 드러났으며 아울러 예수의 사역은 유대인 중심에서 이방인을 향하는데 까지 확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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