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광야에서 양치기로 살아온 모세의 수중에 있는 것이라고는 지팡이가 전부였다. 그것은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모든 양치기의 손에 들려진 그저 그런 나무막대기에 불과하다. 단지 모세의 손에 익숙해졌다는 것 빼고는 전혀 특별하지 않은 물건이다. 오히려 그것은 모세의 비천한 신분과 그의 가난, 그리고 그의 무능을 대변하는 물건이다. 그것이 모세가 가진 전부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난 할 수 없습니다. 아무도 나를 믿지 않을 것입니다'라며 거절하는 모세에게 하나님은 그 지팡이를 언급하십니다.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라고 묻습니다.
그가 40년전 자기의 동족을 해방시키겠다고 괜히 설치지 않았으면 지금 그에 손에는 갈고리와 도리깨가 들려졌을 것입니다.
파라오의 미라를 보면, 파라오는 권위와 능력의 상징으로 갈고리와 도리깨를 가슴에서 교차시키고 있다. 이는 죽음의 세계를 다스리는 이집트 신 오시리스를 상징한다. 도리깨는 타작기로 사용되었기에 이집트의 풍년을 상징하지만 전쟁에서는 무기로도 사용되었다. 지팡이는 목자가 양떼를 다스린 이집트의 옛 목축문화를 반영하며, 백성을 다스리는 힘과 권위를 상징한다. 이 지팡이는 백성에 대한 통치권을 상징하는 왕의 홀을 나타낸다.
모세는 광야에서 양을 치면서 막대기 들어야 했다. 그걸 볼 때마다 문득문득 자기도 모르게 갈고리와 도리깨를 떠올리며 자신의 처지를 더 비관했을 것이다.
•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이러한 좌절과 낙담에 익숙해 있었던 모세에게 자신감을 불어넣고자 하나님께서 하신 질문이었다.
"지팡이입니다"라고 모세가 답하자, 하나님은 그것을 땅에 던지라고 말씀하신다. 모세가 지팡이를 땅에 던지니 무시무시한 뱀이 되었다. 모세가 깜짝 놀라 뒷 걸음질친다. 뱀은 모세에게 익숙한 동물이다. 이집트 왕궁에 있을 때 바로의 왕관에는 뱀이 늘 자리하고 있었다.
바로의 머리엔 '메메스'를 쓰고 있다. 이마엔 '우라이오스'라는 뱀이 형상화된 신이 자리하고 있다. 이 뱀은 이집트의 여신 '우제트'를 상징한다. 본래 우제트는 나일 강 삼각주의 신이었지만 그 중요도가 점차 높아져 결국엔 파라오의 수호신 지위에 오르게 되었다. 이런 이유로 파라오는 왕관의 앞부분에 그녀를 상징하는 코브라 형태의 장식을 붙였다.
그런데 성경에서 이 뱀은 에덴동산에서 인간을 꾀어 하나님을 배반하고 대적하게 한 사탄의 도구, 매개체였다. 이후 성경에서 뱀은 인간의 원수, 즉 하나님의 백성을 상해하는 사단 혹은 사단의 세력을 상징한다(계 12:9).
*계 12:9/ 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 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 쫓기니라.
여기서는 뱀은 선민 이스라엘을 압제하는 애굽의 왕권을 상징하는 이미지로 사용되었다.
• 꼬리를 잡아라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네 손을 내밀어 그 꼬리를 잡으라" 명령하신다.
뱀은 목을 잡아야 물리지 않는다. 따라서 '꼬리를 잡으라'는 명령은 인간의 상식과는 배치되는 것이다. 왜 이런 일을 하나님은 모세에게 하라고 지시하시는 것일 까요?
그것은 모세를 “순종하는 사람”으로 훈련시키시기 위해서이다.
"내밀어" - 주저함없이 손을 뻗치는 모양을 묘사하는 말로, 방금 전에 두려워 피했던 모습과는 (3절) 완전히 대조되는 표현이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상식과 이치에 맞지 않아 보여도 과감히 순종하는 자세가 이 단어 속에 잘 드러난다.
모세는 앞으로 ‘출애굽’이라는 막중한 과업을 수행해야 하는데 출애굽은 상식과 경험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만약 바로왕에게 출애굽 시켜 달라고 하면 그가 순순히 들어주겠는가? 장정만 60만이고 그들 대부분이 노예인데, 그 엄청난 노동력이 한꺼번에 빠져나간다고 상상해보라. 사람 숫자가 곧 국력인데, 애굽이라는 나라의 근간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바로왕 입장에서는 그 많은 노예들이 빠져나가는 걸 결코 용납할 수 없을 것이고 어떻게든 출애굽을 막았을 것이다. 그래서 출애굽은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그 일을 모세가 해야 한다.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오늘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뱀의 꼬리를 잡으라고 하신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을 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게 있다. 바로 ‘순종’이다. 순종은 상식으로 하는 게 아니라 믿음으로 하는 것이다.
순종은 내가 할 수 없는 것과 내가 하고 싶지 않은 것을 하는 것이다. 원수를 어떻게 사랑할 수 있는가? 나를 핍박하는 사람을 위해 어떻게 기도할 수 있는가? 그런데 내가 할 수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은 일을 하나님께서 요구하실 때가 있다. 오늘 모세가 그랬다. 그는 나이 팔십에, 말 주변도 없고, 사람을 때려죽여 도망가 있던 처지였다. 도무지 ‘출애굽’이라는 엄청난 일을 할 처지가 아니었다.
이것을 아신 하나님은 그에게 바로 출애굽을 요구하지 않으시고, 먼저 뱀의 꼬리를 잡는 일부터 시키신다. 그 이유는 이 작은 일에 지금 순종할 줄 알아야 큰일에도 순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순종에는 두 가지 중요한 원리가 있는데 바로 “지금 당장”과 “작은 일”이다.
1) 첫째, 순종의 때는 나중이 아니라 바로 지금
우리가 어떤 일 앞에서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이라고 말할 때가 있다. 그렇게 말하는 사정은 이해가 되지만, 이 말에는 모순이 있다. 세상 누구도 나중에 여유가 생길지 말지는 아무도 모른다. 또 어느 정도가 돼야 여유가 있는 것인지 아무도 모른다. 사람의 만족에는 객관적인 한계치가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재에 순종하지 못하면 미래에도 순종하지 못한다. 만약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순종을 요구하실 때 해야 할 대답은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이 아니라 “예, 지금 하겠습니다.”이다.
2) 둘째, 순종은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
우리가 살면서 큰일을 하게 될 때 어느 날 갑자기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작은 일들이 모이고 모여서 큰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작은 일에 순종하지 못하면 결코 큰일에도 순종하지 못한다. 오늘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라고 시키지 않으셨고, 바로왕을 물리치라고 시키지도 않으셨다. 다만 지금 뱀의 꼬리를 잡으라고 시키셨다.
왜 그렇게 하신 것인가? 그 작은 일에 순종하지 못하면 결코 출애굽이라는 큰일에 순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작은 일부터 결단하고 순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모세를 다시 주목해보아야 한다. 모세는 뱀으로 도전하고 계신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저는 잡기만 하겠습니다.”라는 믿음으로 순종했다.
• 뱀이된 지팡이
그때 그 뱀이 다시 지팡이가 되었고, 모세는 그 지팡이를 들고 ‘출애굽’이라는 대역사를 이끌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뱀의 꼬리를 잡으라”고 말씀하실 때가 있다. 내 가정이나 일터나 교회 안에도 내가 잡을 수 없고, 잡기 싫은 ‘뱀의 꼬리’ 같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세상의 상식으로는 뱀의 꼬리는 잡으면 큰일 나지만, 하나님이 잡으라고 하시면 그것은 어리석고 위험한 행동이 아니라 나를 통해 큰일을 행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거기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뱀의 꼬리’를 잡으라고 하실 때, 믿음으로 잡아야 한다. 물릴 것 같지만 잡는 순간 그 뱀은 다시 지팡이가 될 것이다. 그리고 모세처럼 그 지팡이로 하나님이 일으키시는 기적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오늘 작은 일에 순종하는 사람을 내일 큰일을 위해 다시 부르신다.
• 순종할 때 기적은 일어난다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기 때문이다. 요단강을 창일할 때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매고 맨발로 요단강물에 들어가라고 하신다. 그때는 요단강이 범람하던 시기이다. 발을 내딛는다고 요단강이 멈출 수는 없다.
여리고성을 하루에 한바퀴씩 돌아라 하신다. 매일, 일곱째 되는 날에는 일곱을 돌고 외치라고 하신다.
물이 없는 광야에서 목마른 자들을 위해 반석을 지팡이로 치라고 하신다.
순종만이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경험할 수 있다.
“우리는 순종(順從)하고 하나님은 역사(役事) 하신다”
'샘 슈메이커'라고 하는 사람은 이런 말을 했다. "하나님께 10퍼센트 순종하면 10퍼센트의 행복을, 50퍼센트 순종하면 50퍼센트의 행복을, 100퍼센트 순종하면 100퍼센트의 행복을 누릴 수가 있다." 우리에게 불리할 것 같으면 순종하지 않고, 유리할 것 같으면 순종하는 것은 진정한 순종이 아니다. 이런 변명, 저런 변명을 늘어놓으면서 자꾸 순종하기를 지체하는 것도 진정한 순종이 아니다. "지연된 순종은 불순종의 동생이다."라는 말이 있다. 이처럼 순종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참으로 중요한 요소이다.
• 모세의 지팡이에서 하나님의 지팡이로
모세의 '손안에'는 지팡이는 겉보기에는 초라하고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것처럼 보이나 하나님의 권능이 임할 때 그의 지팡이는 인간 모세의 지팡이가 아니라 여호와 지팡이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실패로 얼룩진 모세의 부끄러운 과거와 하찮은 현재를 살고 있는 모세에게 자신을 바라보기보다 거룩하시고 전능하신 당신만을 바라보게 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그의 지팡이를 새롭게 하신다. 그의 시선을 교정해 주시려는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전개될 일을 미리 예고해주시고 계신다.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꼭대기에 서리라"(출 17:9)
이 얼마나 놀라운 변모인가?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잡고 산꼭대기에 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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