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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설교노트

[공감하시는 하나님] 내가 보았으니]

by 소소한행복^^ 2020. 7.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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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10

모세의 80세가 되었습니다. 미디안 광야에서 40년을 지냈다는 말입니다. 그는 광야에서 그렇게 잊혀지고 사라져간다고 생각했습니다. 모세뿐만 아니라 이스라엘도 하나님께 잊힌 민족이 되었습니다아브라함에게 하셨던 약속은 흘러가는 바람위에 새겨진 공허한 언약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바로의 압제때문에 부르짖기 시작한 것은 모세가 태어나기도 전이니 그들은 오래전부터 부르짖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침묵하시고 상황은 너무 좋질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 보고 계셨고 다 알고 있었습니다.

9절에서 하나님은 "내가 보았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다 보고 계셨습니다. 다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에 눈감고 계신분이 아니십니다. 다 보고 계시고 다 듣고 계시고 다 알고 계십니다.

우리도 모세나 이스라엘처럼 하나님께서는 내가 당한 상황을 모르신가보다 여기고 섭섭하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내 억울함과 고통에 무지하시고 눈감고 계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해입니다.

* 40:27/ 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하여 이르기를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원통한 것은 내 하나님에게서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다 하느냐?

우리의 귀를 만드신 분이 못 들으시겠습니까?
우리의 눈을 만드신 분이 못 보시겠습니까?
우리의 코를 만드신 분이 구린내를 못 맡겠습니까?
아름다운 향기를 기뻐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우리의 입을 만드신 분이 말을 못하시겠는가?
팔을 만드신 분이 그 손으로 돕지 않겠습니까?

* 59:1/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발을 만드신 분이 그 발로 찾아오시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의 제자들도 모세와 같이 고통 가운데 있을 때 주님께서 외면하신다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 6:47-48/ 저물매 배는 바다 가운데 있고 예수는 홀로 뭍에 계시다가 바람이 거스리므로 제자들의 괴로이 노 젓는 것을 보시고 밤 사경 즈음에 바다 위로 걸어서 저희에게 오사 지나가려고 하시매...

내가 보고, 듣고, 알고
"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그들이 그 간역자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듣고 그 우고를 알고,
내가 내려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이르려 하노라"( 3:-8).

동사를 중심으로 본문을 다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내가 보고, 듣고, 알고- 내려와서, 건져내고, 인도하여 이르게 할 것이다." 출애굽기의 핵심이 되는 구절입니다.

1. 공감적 앎으로 일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이 전능은 모든 방면에서 하나님께서는 제한 없으심을 의미합니다. 능력에 한계가 없으셔서 능치 못한 일이 없으십니다. 알지 못하시는 것이 없으십니다. 모든 것을 아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신적인 능력으로 모든 것을 다 아는 지적인 앎에만 자신을 매어 두지 않으셨습니다. 특히 당신께서 일방적으로 먼저 사랑하시고 은혜주시기로 작정한 우리에게 대해서 특별한 앎을 가지시기 원하셨습니다.

공감, 동참, 체휼의 자리로 나아가셨습니다.

그는 전능하시고 전지하시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지만, 뿐만 아니라 그는 우리의 삶에 동참하시고 함께 고통 당하심으로 우리를 아십니다.

히브리문화에서의 '안다'라는 단어는 매우 심오한 의미의 단어입니다. 천사가 마리아에게 "네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라고 말할 때에 마리아 대답합니다. "나는 아직 남자를 모르는데 어떻게 내가 아들을 낳는 단 말입니까?"라고 말할 때, 그 의미는 남자를 한번도 본적이 없어서 모른다는 말이 아니지 않습니까? 이미 마리아는 요셉과 정혼한 사이입니다. 남자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정혼을 하겠습니까? 그녀가 "나는 남자를 모르다"는 것은 함께 동침한 적이 없다는 말입니다.

히브리 문화에서는 '남자가 나는 여자를 안다'라고 할 때 '안다'라는 단어를 신약성경의 언어인 헬라어로 번역한 것이 바로 체휼입니다. 사물과 사람을 알되 관념적으로 알거나 지적으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경험을 통해 인격적인 사귐과 교제를 통해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

* 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체휼두산동아사전은 "처지를 이해하여 가엽게 여김"이라고 정의하였습니다.

다른 반역본에는 Compassion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번역했습니다. 연민, 동정이라는 뜻의Compassion은 본디, "함께 괴로워하다"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영어로 "to be affected with the same feeling as another." 다른 사람이 느끼는 똑같은 느낌으로 감동을 받다(감정을 품다)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아시되, 인격적으로 아시고, 우리의 사정을 동참하시어 아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아시는 주님께서 그 긍휼에 풍성하신 사랑으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인간이 되시고, 십자가를 지셨다는 것은 우리 죄를 대신해서 죽으셨다는 것 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우리 인간의 모든 고통과 아픔을 친히 겪으시고 안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아기로 오신 것 자체가 우리의 모든 삶의 과정을 몸소 통과하셨음을 의미합니다. 마치 아무것도 모르시는 분처럼 오셔서 우리의 모든 삶의 여정을 몸소 겪으시고 아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육신의 법적 아버지 요셉은 예수님에게 아무런 유전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았습니다. 성경의 기록대로라면 예수님이12살 때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간 이후로 등장하지 않습니다. 일찍 돌아가셨다. 이는 예수님께서 일찍 가장이 되어 어머니 마리아와 동생들을 부양해야 했음을 의미한다. 성경은 예수님에게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의 네 명의 형제가 있다고 알려줍니다( 13:55).  우리를 공감하시며 아십니다.

2. 공감 능력이 부족한 사회
우리 사회의 문제는 공감하고 동정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것이 수면위로 드러난 게 세월호가 수면아래로 가라앉을 때입니다. 대한민국의 총체적인 부실이 드러났는데요, 특히 우리들 마음에 있는 비인간성이 온세상에 발각된 날입니다. 요즘 국가부도의 날이란 영화가 개봉했다고 합니다. 1997 IMF 구제금융을 받기로 결정하기 까지의 그 긴박한 상황을 그린 영화라고 합니다. 국가부도가 아닌 국가부실을 보여주고, 부패한 인간성을 보여준 것이 세월호입니다.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하다가 세월호와 같이 생떼같은 아이들을 침몰하자, 부모들은 울부짖었습니다. 자식이 죽었는데 무엇으로 그들을 위로하고 누군들 그들의 아픈 마음을 만져줄 수 있겠습니까? 그들의 찢어지는 아픔에 동참하기보다는 많은 사람들은 그들을 정죄했습니다. 진상조명 요구하고, 책임자를 공정하게 가려내 그 죄값을 묻고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재발방지를 약속해달라고 요구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자 금식하게 됩니다. 그들 앞에서 사람들은 피자를 시켜서 게걸스럽게 먹으면서 조롱했습니다. "보상금을 더 받으려고 한다. 보수정부를 몰아내려는 수작이다."

제가 보기엔 인간이기를 포기한 사람들입니다. 특히 국정을 책임지고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사람들이 공감할 줄 모릅니다. 그러니 그들이 맡은 큰 책임과 직무로 인해 피해는 약자와 소자들의 몫입니다. 살피고 아파하기보다는 자신들의 이익을 따라 직무를 펼칩니다. 세월호 부모를 감청하고 비행하고 사찰하고.... 그런 사람들의 손에 맡겨진 나라에 산다는 것이, 국민이다는 사실이 부끄럽고 화가 납니다. 언젠간 바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와 생각을 달리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가지만 생각해 보십시다. 당신의 자녀가 그 배에 탔고 그런 끔찍한 일을 당했다면, 어떻게 하셨겠습니까?

반미치광이가 되지 않을까요?

누군가가 그런 당신에게 적당히 해라, 돈 벌려고 자식 팔지 말아라. 그렇게 말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사랑하는 아이를 떠나보낸 한 어머니가 있었습니다그 어머니에게 많은 사람들이 찾아가 위로의 말들을 건넸지만 어머니를 위로하는데 성공하지 못했습니다그러던 중 한 여인이 어머니를 찾아갔습니다. 그 여인은 아무런 말도 전하지 않았다.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어머니와 함께 울어줬습니다. 그랬더니 아이를 잃은 어머니가 크게 위로를 받았습니다.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어 그 이유에 대해서 알아보니 어머니와 함께 울었던 그 여인도 얼마전 아이를 잃었던 것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 그리고 공감하시는 주님이 지금도 우리를 위해 하늘에서 중보자로 계시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3. 잘 알지만 공감하지 못하는 존재
사탄은 오늘의 주제를 관점으로 정의하면, 거의 모든 것을 다 알지만 결코 공감하지도 동참하지도 체휼하지 못하는 하나님보다 못하고 우리보다는 상당히 뛰어난 존재라는 것입니다.

* 2:19/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 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 1:21/ 저희가 가버나움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 마침 저희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소리질러 가로되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4. 공감하지 못할 때
여러분은 다른 사람들을 얼마나 공감하십니까?
욥의 이야기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극심한 고통과 삶의 신비로운 것들을 말해주며,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이 세상의 일들이 사실은 하늘과 영적인 세계, 영적인 존재들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지 보여줍니다.

욥에게 있어서 힘든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그 많던 재산을 한꺼번에 다 잃는 것
자식들이 한자리에서 몰살하는 것
살을 맞대고 살았던,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알콩달콩 하나님 앞에서 살겠다고 서약한 마눌님이 등을 돌린 것이 아닐까요?

* 2:7-9/ 사단이 이에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서 욥을 쳐서 그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악창이 나게 한지라 욥이 재 가운데 앉아서 기와 조각을 가져 다가 몸을 긁고 있더니 그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키느뇨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믿었건 친구들에게 이해 받지 못한 것이 아닐까요?

[안타깝게도 욥의 친구들은 욥이 당하는 고난의 미스터리를 참을 수가 없어서 그 고난의 원인에 대한 결론을 섣불리 내리려 하였습니다.

엘리바스는 욥이 다른 사람들을 일으키고 세우며 힘이 되어 주는 존재였음을 인정한다( 4:3-4). 그러나 곧이어 그는 욥의 고난을 놓고 욥에게 대놓고 비난을 퍼붓는다. “생각하여 보라 죄 없이 망한 자가 누구인가 정직한 자의 끊어짐이 어디 있는가 내가 보건대 악을 밭 갈고 독을 뿌리는 자는 그대로 거두나니”( 4:7-8).

빌닷도 그와 진배없는 말을 한다. “하나님은 순전한 사람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악한 자를 붙들어 주지 아니하시므로”( 8:20).

또 한 친구 소발은 그 후렴구를 다시 되풀이한다. “네 손에 죄악이 있거든 멀리 버리라 불의가 네 장막에 있지 못하게 하라 그리하면 네가 반드시 흠 없는 얼굴을 들게 되고 굳게 서서 두려움이 없으리니 …… 네 생명의 날이 대낮보다 밝으리니 어둠이 있다 할지라도 아침과 같이 될 것이요”( 11:14-15, 17).
  

논리가 다가 아니다
그들은 삼단논법의 추론을 펼칩니다. ‘하나님은 악인들에게만 재난을 내리신다. 너는 재난을 당했다. 그러므로 너는 악한 게 틀림없다.’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이 이런 식의 삼단논법을 쉬이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욥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응보 신학으로 불리는 삼단논법은, 하나님은 그분께 신실한 사람에게는 복을 주시고, 죄를 짓는 사람에게는 벌을 주신다는 것을 전제로 모든 것을 단순하게 생각하고 결론 내립니다. 공감하고 이해하려고 들지 않습니다. 판단하고 정죄하려고 합니다.

다른 사람들에 대해 얼마나 아십니까?
잘 알지도 못하면서 쉬 정죄하고 있지는 안으십니까?
다른 사람들을 얼마나 공감하십니까?
동참하십니까?
체휼하십니까?

5. 행동하는 공감
보고, 듣고, 알고- 내려와서, 건져내고, 인도하여 이르게 하신다

하나님의 공감은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내려오시고(하늘의 영광을 버리신 것입니다),
-
건져내고(시궁창 같은 늪에 빠진 사람을 건지기 위해 직접 그곳에 들어가셨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입니다). 
-
인도하여(우리를 사랑하시고 구원하시되 일시적인 동정심에서 하신 것이 아닙니다. 끝까지 자기 사람을 사랑하고 책임지고 구원을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13:1).)

우리의 등을 두드리는 예수님의 손에는 구멍이 뚫려 있습니다. 우리와 함께 걸어 주시는 예수님의 발에도 구멍이 뚫려 있습니다. 우리의 옆에서 도우시는 예수님의 허리에도 구멍이 나 있습니다. 그분의 머리와 등, 그리고 온 몸에도 찢긴 상처가 나 있습니다무엇보다 그 분의 마음에는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배신당하고, 버림받으며, 억압받아 갈기 갈기 찢겼던 상처가 아물어 있습니다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아픔을 예수님께서도 경험하셨기 때문입니다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흘리셨던 피땀과 십자가 위에서 외치셨던 외침은 인간의 고통을 간접적으로 경험하신 하나님의 외침이 아니라 직접적으로 경험하신 인간의 외침이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위로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강력하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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