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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설교노트

[스스로 있는 자]

by 소소한행복^^ 2020. 7.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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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3.13-14

어느 날, 평범한 일상속에 갇히고, 자신의 열등감에 함몰되어 꿈도 비전도 없이 살아가는 모세에게 타오르는 불꽃으로 찾아오신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바로와 이스라엘에게 보낸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부르심에 모세는,
"
내가 누구이기에"라고 답합니다. 이 말의 의미는,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라는 것입니다. 4:13의 증언입니다. "모세가 가로되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 4:13)

그런 모세의 말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은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에흐에 임마크'
"
네가 중요하지 않다. 내가 함께 하느냐 하지 않느냐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의미를 담아 걱정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1. 나 여호와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애굽에 보낸 자가 나 여호와다.

그들을 그곳에 보내기 전에 나는 요셉을 먼저 보내어 그들이 그 땅에 살아갈 수 있는 모든 상황을 조성하였단다.

요셉이 애굽에 팔려 갈 때, 나는 그를 홀로 보내지 않았다. 나는 그와 함께 내려갔다.

그가 보디발의 집에 노예로 팔렸을 때, 나는 그와 함께 하여 그에게 형통하는 은혜를 베풀었다.

그가 억울하게 모함받아 감옥에 갇힐 때에 나도 그와 함께 그 감옥에 있었다. 그에게 좌절하지 않도록 용기와 믿음을 그의 혼에 불어넣었고, 그의 심장이 여전히 뛰고 그의 호흡이 멈추지 않도록 그의 몸을 붙들어 주었다.

그를 많은 시련과 고통을 주어 연단하여 크고 깨끗한 그릇으로 만든 이가 나이다. 그가 그 고통속에서 인생을 배우고, 다른 이들을 공감하고 그에게 고통을 안겨준 용서하고 따뜻한 가슴으로 끌어안을 수 있는 성숙한 인간으로 세운 이도 나다.

무엇보다, 이 세상을 통치하고 운영하여 마침내 내 뜻을 이루어 가는 나의 섭리를 그에게 깨달아 알게 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입에서 이런 고백을 하게 하였다.

* 45:5-8/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1)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이 땅에 이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년은 기경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찌라

2)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 그런즉

3)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로 바로의 아비를 삼으시며 그 온 집의 주를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치리자를 삼으셨나이다.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인가! 얼마나 놀라운 요셉의 신앙인가!

*칼빈은 기독교 강요에서 "섭리"를 이렇게 설명했다.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으로 표현하며 우리가 그 손에 붙들려 있음을 피력했습니다. 매일 매일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아 아는 것이 믿음이며, 보이지 않는 손으로 우리를 붙들어 주시고 우리의 인생을 가꾸어 가시는 하나님을 아는 것이 평범한 일상을 비범하고 특별한 날로 만드는 비결입니다. 그는 이렇게 하나님의 섭리를 설명했습니다. “운명에 따르는 것 같아도 하나님의 정하심과 일하심을 통하지 않고는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하나님의 섭리는 우연과 운명을 모두 넘어선다. 하나님은 자신의 기뻐하심에 따라서 모든 일을 뜻하시고, 뜻하신 즉 이루시고 이루신 즉 그 행사가 다 선하다.”

2. 당신은 누구신가요
그러나, 모세는 그 깊고 깊은 의미를 알아듣지 못합니다. 그래서 또 묻습니다. "그럼 당신은 누구입니까?"

이는 단지 호칭적 차원의 이름을 묻는 것이 아니다.

"당신은 어떤 분이십니까?" 본질, 속성을 묻는 것이다. 아직 모세는 유일신 사상이 흐릿한 때를 살아가고 있다. "그저 애굽의 수 많은 신중에 하나 같은 존재 아닌가요?"라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이름을 가지고 있다. 모든 사물에도 이름을 지어 부른다.

1) 이름을 짓는 것, 이는 본래 우리 인간의 사명이다.
'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

이것이 인간이 처음 창조되고 한 사역이었다. 여기서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 '무엇’, 본질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것을 규정하고, 정의할 뿐만 아니라, 그 존재의 의미를 불어넣는 작업이 이름을 짓는 것이다

따라서 이름을 바꾼다는 것은 곧 새로운 신분이나 새로운 삶의 목적을 얻었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전과는 삶을 살아가는 이유와 목적을 발견한 것이다. 사명의 유레카이다.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사래를 사라로, 야곱을 이스라엘로 개명해 주신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새로운 존재로 들어 쓰시겠다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고대인들에게 이름은 일종의또 다른 자기였던 것입니다.

모세의 이 질문이 중요한 것은, 인간이 지어준 이름이 아닌 인간의 질문에 하나님께서 스스로를 가르쳐 주신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3. 내 이름은 '나는 이다'

하나님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다"라고 자신의 본질을 가르쳐 주십니다.

1)
이는 "나는 존재다라는 의미이다. '나는 존재물이 아닌 존재케 하는 이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라고 할 때에는 “너는 존재가 아니다”, "너는 존재케 된 자이다." 너뿐만 아니라, 나 외에 모든 것은 존재물에 불과하다.

*고전 15:45/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었나니("Adam was a living soul. The last Adam is the life-giving spirit.")

마지막 아담은, 예수님이시다. 우리는 다 그로 말미암아 존재하게 되었고, 그는 모든 존재하는 것들의 원인이며, 이유이며 목적이다. 그가 우리를 진정 존재케 하시는 분이라면, 우리는 그분을 위해 존재하고, 그의 뜻을 따라 살아야 한다.

2) 나는 나였던 대로의 나이다. I am that I am,
나는 나였던 대로의 나일 것이다. I will be that I will be.

이것을 풀어서 설명하면,
나는 현존하시는 과거요, 또 현존하시는 미래이다. 나는 영원전부터 영원후까지 항상 현재로 존재하는 존재로서, 언제나 동일하신 분이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경험한 사람들은 그 사건에 이름을 붙인다. 그 장소에 이름을 붙여 기념한다.

그들이 경험한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의 사건은 단순한 자기에게만 일어난 지나가는 사건이 아니라 오고 오는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계속되는 사건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주관적 경험은 객관적인 의미의 되 살아날 것을 알았기에 이름을 지어 그것을 후대에 전하길 원했다. 그 이름은 하나의 계시가 되고 메시지가 되었다

여호와 이레- 아브라함이라는 개인이 단지 모리아산에 경험한 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경험할 하나님의 준비와 공급이 될 것이다. 특별히 우리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께서 친히 준비하신 구원자가 어떤 분인지를 계시하고 선포하는 메시지이다.

여호와 샬롬- 기드온이 경험한 하나님의 평강은, 단지 그에게만 국한된 감정은 아니다.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이 감당할 수 없는 사명과 두려운 상황 속에서 만난 놀라운 하나님의 임재와 평강을 동일하게 경험하고 누리게 되는 것이다.

4. 내 이름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이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었다. 요셉의 하나님이었다. 그들을 불러, 내 계획안으로 들어오게 했고, 그들을 나의 목적을 위해 살도록 만든 자이다. 그들이 나의 목적을 그들의 목적으로 삼고 살아 갈 때에 그들과 함께 호흡하고, 함께 먹고, 함께 웃고, 함께 울며 그들을 통해 일해온 여호와이다.

-우상숭배자 아브라함을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아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예배자로 만드신 분, 외아들 독자까지 아까지 않고 하나님께 드리는 제단을 쌓았던 순종의 제사를 드리는 자로 만들어 가신 여호와다.

-자기 생명을 구하고자, 아내를 두 번씩이나 '남편'인 것은 감추고 누이라고 속인 겁쟁이, 비겁자였던 그를 조카 롯을 구원하기위해 용맹스럽게 싸우는 자가 되었다.

-아내를 누이라 속이고 얻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애굽을 나왔다. 얼마나 부끄럽게 모아진 재물인가? 그런데 그는 롯을 구원하고 소돔사람들이 탈취당한 것들을 모두 되찾아 돌아온다. 그 때 소돔왕이 사람들만 돌려주고 물건은 당신이 취하시오.

* 14:23/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케 하였다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무론 한 실이나 신들메라도 내가 취하지 아니하리라

나의 과거를 바꾸시는 영원히 현존하시는 하나님이시다. 후회로 가득한  과거를 현재에도 반복하며 살아가는 안타까운 인생, 그리고 그것이 미래가 될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새롭게 창조하실 분이시다. 과거의 저주와 실패의 사슬을 끊어 내시는 하나님이시다. 새로운 꿈을 꾸고 비전을 가슴에 그릴 수 있도록 하시는 분이시다. 늙은이도 꿈을 꾸고, 어린아이도 미래의 일을 말하고 젊은이도 환상을 보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그의 임재 안에 거하고 그의 섭리의 손길을 의지하고 살아가면 그분은 바꾸신다. 무에서 유를 만드신 하나님에게 그것은 조금도 어렵지 않다.

우리의 인생에 반전을 만들어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그 하나님께 자신을 맡기지 못하면, 실패자요 무의미한 과거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며, 미래가 된다. 패배의식, 피해의식이 충만한 패배자의 과거만 반복된다.

5. 나 여호와는 완성하는 자
하나님은 일을 성취하시는 여호와, 완성하시는 분이다.

이 이야기(요셉을 애굽에 보낸 것,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가나안으로 부른 것)을 시작한 것은 나이다. 나는 이 것을 끝마칠 것이다. 네가 누구이든, 상관이 없다. 아니 꼭 네가 아니어도 되는 일이다. 그러나 너에게 이 일에 동참하는 놀라운 특권을 주려는 것이다.

너의 조상과 맺은 약속을 성취하시기 위해 모세, 너를 부르고 있다

우리에게도 찾아오셔서, 구원하시고 당신의 거룩한 일에 동참하도록 부르신다. 우리의 인생의 미래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게 하시는 분이다.

이 약속의 성취는 보냄을 받은 자의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보내신 자의 능력과 의지에 의해서 성취되는 것입니다.

* 33:2/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

* 33:7-10/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가 가리켜 말하기를 황폐하여 사람도 없고 짐승도 없다 하던 여기 곧 황폐하여 사람도 없고 주민도 없고 짐승도 없던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즐거워하는 소리, 기뻐하는 소리, 신랑의 소리, 신부의 소리와 및 만군의 여호와께 감사하라,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하는 소리와 여호와의 집에 감사제를 드리는 자들의 소리가 다시 들리리니

이는 내가 이 땅의 포로로 돌아와서 처음과 같이 되게 할 것임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 1:6/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6. 인간의 질문과 하나님의 답변
질문하지 않는 인생에게 답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
당신은 누구십니까"라는 모세의 질문은 중요하다. 하나님을 바로 아는 것이 복이다. 신앙의 출발은 하나님을 아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은 누구입니까 라는 모세의 물음에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다'라고 가르쳐 주셨다.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닌, '무엇’, 곧 본질을 나타내는 것이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 그분은,
우리를 있게 하신 분이다.
우리의 과거를 바꾸시는 분이다. 반전을 일으키시는 분이시다.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이시다.

그래서, 마침내 우리로 당신의 일에 동참케 하시며, 우리에게 삶의 목적과 사명을 주어 이루시는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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