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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설교노트

고난이 주는 유익

by 소소한행복^^ 2020. 7.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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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애굽기 1:8-14.

 

흑사병은 인류 역사에 기록된 최고로 끔찍한 사건 가운데 하나일 것입니다. 위키피디아 사전에.의하면, 유럽 지역에서는 1346–1353년 사이 절정에 달했으며, 유라시아 대륙에서 최소 7500, 최고 2억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죽었다고 합니다. 흑사병 병원균에 관한 많은 이설이 있었으나 2010-2011년 남유럽인들을 대상으로 수행한 DNA 분석 결과 페스트의 병원균인 페스트균이 병원균으로 밝혀졌습니다

당시 유럽에서는 흑사병이 왜 생기는지는 몰랐기 때문에, 거지, 유대인, 한센병 환자, 외국인 등이 흑사병을 몰고 다니는 자들로 몰려서 집단폭력을 당하거나, 심지어는 학살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사회적 혼란을 사회적 소수자들에게 전가한 희생 양적인 폭력이었습니다. 한편, 흑사병의 창궐은 삶에 대한 태도도 바꾸어 "지금 이 순간을 즐기자"는 신조를 낳았고, 이는 보카치오의 《데카메론》 등에 반영되었고 합니다

인류가 오늘날처럼 건강하고 장수하던 때는 일찍이 없었습니다. 페니실린 같은 치료제의 발견과 백신같은 예방약의 발견의 결과로 유아사망율을 현저하게 줄일 수 있었습니다. 옛날엔 백 일을 넘기기 어려워 백일상을 차려주었던 것입니다.

 

가나안에서 이집트로 이주한 이스라엘은 모두 70명이었습니다. 70명의 사람들이, 유대 민족이 가나안을 향해 시내 광야를 떠날 시점에는 싸움에 나갈 만한 603,550명의 남자를 포함해서( 1:46) 2-3백만 명으로 불어났다.

이것은 자연적인 현상이나, 정책의 결과이거나, 이스라엘백성이 다른 민족보다 체력이 뛰어나거나 의술이 더 뛰어난 결과가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하신 하나님의 맹세의 결과라는 것을 우리는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열심과 신실하심이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 23:19/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 

상황이 좋질 않고, 우리가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 백성에게 주신 말씀을 붙잡고 나아가야 하며, 기도할 때에 그 약속을 주장해야 합니다. 사탄이 우리의.믿음을 흔들려 할 때, 하나님의 말씀으로 방어벽을 구축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떤 순간에도 주님이 주시는 평화를 누리게 됩니다.

   

1. 이스라엘을 두려워함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의 축복은 그들이 당하는 고통의 원인이 되기에 이르렀습니다. 8절입니다.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서 애굽을 다스리더니”( 1:8)

단지 요셉이 누구인지 모른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집트 정치판에 거대한 소용돌이가 일기 시작했습니다. 이집트의 역사를 들여다봐야 하는데요

이것은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주신 행정력을 직접적으로 경험하지 못한 새 왕 또는 요셉의 영향력을 시기한 왕을 가리킨다(, “알다는 개인적 관계를 나타냄; 체험적으로 아는 것. 남자를 알지 못한다는 마리아의 표현처럼].

이것은 힉소스 왕들(셈족, 요셉 때)로부터의 멍에를 벗어버린 이집트의 새 왕조 즉, 아모시스(아모세스, 주전 1570-1546 )를 가리킵니다. 그들은 힉소스 왕조 때 밀려나 나일강 상류 쪽에 숨죽여 지내던 함족(아프리카 사람들)입니다

이스라엘이 셈족에 속함, 가재는 게편이고 초록은 동색이라고 셈족계통의 왕조가 일어날 때 이스라엘이 같은 셈족을 도울 것이라는 추측에 근거한 것입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두려워합니다. 이유는 그들에게 이스라엘은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는 중요한 경제 인프라였습니다. 그 노동력이 대거 빠져나감으로써 그가 입게 될 경제적인 타격을 싫어했던 것입니다.

바로는 이스라엘이 너무 많아져 그들에게 위협이 되는 것도 싫고, 그들이 사라져 노동력을 잃어 경제적인 손해를 보는 것도 싫었습니다.

 

2. 이스라엘을 괴롭게 함

바로는 그의 참모들을 모으고 정책을 논의합니다. 사실상, 그의 일방적인 지시와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리석은 짓인데요, 결과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결과를 만들어 냅니다.

 1)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함

바로는 자신이 인식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취한 일은 이스라엘을 노예로 취급하기 시작합니다. 이스라엘은 환영받은 손님에서 종으로 바뀌는 일이 커다란 변화를 맞이합니다!

바로는 신전인 '비돔'과 왕이 거주하는 성채 '라암셋'을 건축하는데 히브리인들을 노예로 부립니다( 1:11). 파피루스 라이덴 348에서는 아피루노예들을 시켜 신전에 사용할 돌들을 가져왔다"는 기록이 있다고 합니다. 이 노예들이 히브리인 노예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학대받는 이스라엘이 더욱 번성하자( 1:12) 점점 강도가 세어집니다. 양동작전을 펼치는데, 더욱 힘든 노역을 시키고, 사내아이 죽이라는 무섭고 끔찍한 명령을 내립니다.

그러나 그들은 바로의 학대로 멸절되는 대신 더욱더 번성했습니다! 바로는 악을 이루기 위해 가혹한 속박을 꾀했으나 하나님은 선을 이루기 위해 그것을 사용하셨습니다. 그러한 학대는 유대인들로 애굽에서 약속의 땅에 이르는 고된 여정에 대비하도록 도움을 주었습니다. 또 고난을 통해 그들은 하나님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3. 이스라엘에게 고난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

 

1) 세속에 뿌리내린 이스라엘

이 고난은 현실적으로 이스라엘에게 말그대로 고통이었습니다. 고난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허락하신 그들의 의식깨우기였습니다.

거의 400년을 애굽에서 지내면서 그들은 점점 여호와 하나님을 잊어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인 가나안 땅으로의 귀환도 잊었습니다애굽이 더 좋고, 애굽이 더 편하고, 더 풍족했습니다. 굳이 가나안에 갈 이유가, 필요가 그들에겐 없었습니다

그들의 삶이 4백년 가까이 애굽에서 진행되면서 애굽화 되었습니다. 고센 땅에 자치구를 이루고 살았지만 내왕하면서... 애굽의 문화, 생활을 받아드렸고오늘날 애굽의 문헌과 자료들을 바탕으로 당시 문명을 재현하면 오늘날 사람들도 깜짝 놀랄 만한 화려함과 편리함, 쾌락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욕망을 부추기고 오감을 자극하고 만족하게 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의술은 뇌수술도 가능했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그들에게는 스토리텔링적 기가 막힌 세계관, 사후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잘 만들어지고 짜인 종교체계는 사람들을 현혹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후에 보겠지만, 바로의 술사들이 모세가 지팡이로 뱀을 만들자 비웃으며 그대로 재현하는 모습은 이러한 초능력은 그들의 종교에 신빙성을 더해주었습니다.

이스라엘음 조금씩 그들의 종교관, 신관을 받아들였습니다.

일찍이 이집트의 이러한 문명과 종교를 맛본 롯은 거기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됩니다. 아브라함과 롯의 양들이 많아지자 목자들이 서로 좋은 목초지를 차지하기 위해 다투게 됩니다. 두 가정의 양들의 숫자에 비해 목초지가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속된 말로 찢어지기로 합니다. 아브라함이 성숙한 면모를 보여줍니다. 하나님께 다루심을 받은 신앙인의 면모를 엿보게 됩니다. 룻을 부르고 말합니다.

우리가 일가 친척인데, 더군다나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인들로서 서로 다투는 것은 아름답지 못하다. 자 네가 먼저 선택해라. 네가 동으로 가면 나는 서로 가고, 네가 서쪽으로 간다면 나는 동쪽으로 가겠다.”

욕심의 지배를 받는 롯은 자신을 어렸을 때부터 돌 봐준 아버지같은 삼촌에게 양보하지 않고 기다렸다는 듯이 말합니다.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들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는고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13:10)

왜 롯의 눈에는 소돔과 고모라가 여호와의 동산(에덴동산)과 애굽 땅처럼 보였을 까요? 왜 그는 하나님의 동산과 애굽을 동등하게 놓고 소돔 땅을 비유하고 있을까요?

그만큼 애굽 땅이 세속적인 눈으로 바라보면 에덴동산 같은 곳으로 보일 만큼 대단히 멋지고 화려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롯은 세속적인 그리스도인의 전형~적인 인물입니다. 부창부수(夫唱婦隨, 남편이 주장하고 아내가 잘 따르는 것이 부부 사이의 도리라는 말)라고 했던 가요. 그의 아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니, 그의 아내는 가히 최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롯은 그래도, 그곳에서 신앙인으로서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벧후 2:7 "무법한 자의 음란한 행실을 인하여 고통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소돔과 고모라가 너무도 악하여, 하나님은 그곳을 무섭게 심판하십니다. 롯과 그의 가족(아내와 두 딸)을 구원하여 그곳에서 이끌어 내십니다. 그들을 이끄는 천사는 한가지를 경고합니다. 하나님이 소돔과 고모라, 그들 눈에 애굽처럼 보였던 그곳을 심판하기 위해 하늘에서 유황불을 내릴 때 결코 뒤돌아보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그 땅에 대한 미련을 끝까지 버리지 못하는 롯의 아내는 천사의 경고를 무시하고 뒤돌아봅니다.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 본고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 19:26)

소돔과 고모라의 화려함과 편리함과 즐거움에 매료된 그녀는 어느새 노예가 되어 있었습니다. 도저히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애굽, 거기가 하나님의 백성이 뿌리내릴 땅이 아닙니다. 그 백성은 가나안 땅, 하나님께서 그 백성과 함께 살기로 한 땅으로 나가야 합니다. 거기에 심겨져야 할 거룩한 백성이요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2) 점점 세상속으로 빠져드는 하나님의 백성

롯의 아내가 처음부터 그렇게 세속적이고 소돔적이었을까요? 아마 아닐 것입니다. 시편 1편은 우리에게 중요한 것을 가르쳐 줍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1:1)

세 단어에 주목하십시다. 좇다(Marcher걷다), 서다(s'arreter), 앉다(s'asseoir). 점점 더 악한 상태에 빠지게 되어 완전히 그것에 사로잡히는 상황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간섭하지 않으면 이스라엘은 애굽이라는 세상이 전하는 달콤함과 편리함 종교적 체계와 의식에 매료되어 점점 그 땅에 뿌리를 깊게 내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고난은 그래서 그 자체가 축복입니다.

이집트에서 진리를 알게 되고 생명을 얻을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곳에서 데리고 가지 않을 것입니다.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14:12)

고난이 아니라면 애굽(세상)이 전부인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과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갖게 하시려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장치입니다.

 

3) 흔들어 의식 깨우기

그래서 고난은 그들에게 필요했습니다. 고난은 하나님의 뿌리 흔들기입니다. 의식 깨우기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

나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나는 종국에 어떻게 되는가?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는 의식깨우기였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거기에, 주저 않게 됩니다.

예수님의 비유 중 탕자의 비유는, 우리에게 많은 감동을 주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원리를 가르쳐줍니다. 탕자가 언제 아버지를 기억합니까? 자신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이에 스스로 돌이켜 가로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에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15:17)

바로 고통 속에서였습니다. 잘 나갈 땐, 기억하지도 질문하지도 않습니다. 아무도 돌보지 않고 의지할 곳이 없게 되자 그는 비로서 자신에게 돌아가게 됩니다.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이 어디이며, 머물고 사랑받아야 할 곳이 어디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4)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게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역으로 인하여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역으로 인하여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한지라...”( 2:23)

고난이 없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찾지 않고 그의 이름을 부르짖지 않을 것이다고난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삶의 고난을 통해 우리가 진리를 알게 된다면 이는 값진 선물입니다. 하나님을 찾고 부르짖는다면 고난은 축복입니다.

 

4) 겸손하게 낮추십니다.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주는 선하사 선을 행하시오니 주의 율례로 나를 가르치소서”( 119:67-6)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119:71)

  

5) 귀로 듣던 신앙에서 눈으로 보는 신앙으로 발돋움한다

고난을 통해 우리의 신앙은 더욱 깊어집니다. 하나님을 더 깊게 알게 됩니다.

욥은 고난을 통과한 후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하나님을 귀로 듣던(풍문으로만 들었는데) 신앙에서 눈으로 보는 신앙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42:5)

 

그러므로

 

- 질문해야 합니다

 고난을 당할 때 우리는 이렇게 하나님께 질문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 이 고난을 통해 무엇을 깨닫기를 원하시나요? 이 고난을 통해 무엇을 얻어야 하나요? 이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재료가 된다. 관계 맺게 되고, 관계회복의 수단이 된다면 고난이 내게 유익이 되는 것입니다.

 

-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고난당하는 자를 도와주십니다.

내가 알거니와 여호와는 고난 당하는 자를 신원하시며 궁핍한 자에게 공의를 베푸시리이다”( 140:12)

우리 모두 삶의 고난이 올 때에 하나님을 더욱 찾으십시다. 우리가 더욱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삶을 살아가십니다. 고난의 우리에게 유익이 되었다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무의 나이태가 계절의 변화, 혹독한 환경의 변화를 통해 더 단단하게 둘러지듯이 우리의 신앙도 더 단단하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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