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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설교노트

우리에게 명하시는 대로

by 소소한행복^^ 2020. 9.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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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애굽기 8:21-32

"우리가 사흘 길쯤 광야로 들어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되 우리에게 명하시는 대로 하려 하나이다"(출 8:27)


들어가며
•인류의 문명을 바꾼 위대한 발견이나 발명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기존의 문병을 파괴하고 새로운 문명이나 문화를 창조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나 작용을 한 것은 무엇일까요?

•UCLA 재럴드 다이아몬드 교수는, 건스, 점ㄹ스 앤 스틸[총, 균, 쇠(총, 세균, 강철)]을 듭니다. 무기를 대변하는 총과 과학기술(산업)을 대변하는 강철이 인류의 문명사를 바꿨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세균은 언뜻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역사를 조금만 세균 또는 질병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이내 그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시인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스페인 지원병 중 아프리카 노예 한 명이 천연두에 걸렸던 것이다. 스페인 군사들의 시체로부터 천연두라는 무시무시한 병이 아즈텍 사람들에게 옮겨갔다. 아즈텍 사람들은 천연두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력이 존재하지 않았다. 거대한 아즈텍 제국은 어느새 천연두 환자들로 북적대었다.
사실 천연두는 당시 유럽 사람들을 덮쳐 많은 사상자들을 냈었다. 그러면서 어느 정도 유럽 사람들은 천연두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력을 보유했었다. 물론 코르테스를 포함한 스페인 군인들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천연두로 아즈텍 제국의 1/3 이상이 죽을 만큼 이미 쑥밭이 되어 있었다. >

세균은 우리와 동거합니다. 때론 불편한 동거, 때론 고마운 동거자 입니다.

-우리 동양인의 약 75%정도는 몸에 우유를 소화하지 못하는 유당불내증을 갖고 있으며 그들은 우유 영양분을 흡수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소화되지 않은 우유는 장에서 독이 되어 설사를 일으키게 된다고 합니다. 물론 유당불내증인 사람은 요구르트를 마시거나 우유를 200ml정도 소량만 계속 마시면 유당 소화력이 생겨 나중에는 탈없이 우유를 마실 수 있게 된다고 합니다.

-밀가루를 먹으면 소화가 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는 밀이나 보리 등 곡류에 들어있는 글루텐 때문입니다. 메밀을 제외한 모든 ‘밀’(밀가루, 호밀, 통밀 등)에는 글루텐(Gluten)이라는 불용성 단백질이 들어 있습니다. 글루테닌과 글리아딘으로 구성된 글루텐은 우리가 자주 접하는 라면, 우동, 자장면 등 각종 면류를 비롯해 빵, 과자 등 밀가루로 만든 모든 제품에 들어 있습니다.

끈적이는 성질을 갖고 있는 글루텐은 밀가루 반죽을 탄력 있게 하고 빵을 부풀어 오르게 해줍니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 신경계, 면역계, 관절, 치아 등에 영향을 미칩니다. 특정 체질의 사람에게는 설사, 복통, 소화장애 등의 부작용도 일으킵니다. 이런 이유로 최근 글루텐프리(Gluten Free) 제품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글루텐프리 식품은 글루텐이 함유되지 않은 곡류를 사용해 제품 내 글루텐 함량이 20~100ppm 이하인 식품을 말한다. 글루텐프리 제품에 사용할 수 있는 곡류로는 쌀, 콩, 옥수수, 메밀, 감자 등이 있습니다.


우리 몸에는 우리 몸의 세포수와 비슷한 량의 세균과 박테리아 바이러스가 기생한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세균덩어리입니다.

-토끼, 어미는 자기 새끼에게 똥을 먹입니다. 이유는, 소화를 할 수 없기에 소화를 돕는 세균을 장속에 넣어주기 위함입니다. 토끼는 또 되새김을 할 수가 없어 자기 싼 똥을 먹어야만 소화를 할 수도 있고 충분한 영양분을 섭취할 수 있다고 하네요.

이와같이 우리 스스로는 소화나 흡수를 못하는 음식물을 우리 몸에 동거하는 세균이 이것들의 소화나 흡수를 돕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 인간이 얼마나 의존적인 존재인지 보여줍니다. 세균의 도움 없이는 살아가기 힘듭니다.

우리 인간이 얼마나 작고 연약한지도 알게 됩니다. 드 넓은 우주는 고사하고 내 몸의 없어서는 안될 고마운 세균도 우리에게 불청객으로 다가오면 우리를 죽이는 치명적인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총이나 원자폭탄보다 더 무서운 살인병기가 될 수 있습니다.


2. 네 번째 재앙은 파리들의 대행진이였습니다.
사람을 직접 공격하는 모기와 달리, 파리는 각종 세균·바이러스 등의 병원체를 사람에게 살포하는 ‘생화학 부대’와 같습니다. 파리가 옮기는 질병은 장티푸스, 파라티푸스, 콜레라, 결핵, 살모넬라성 위장염, 기생충(조충·선충·회충), 세균성이질 등이 있습니다.

가장 흔히 보는 집파리는 사람이나 동물의 배설물, 쓰레기장, 퇴비장 등 동식물성 유기물질이 썩고 있는 곳에선 어디서나 산란, 번식합니다. 수명은 1개월 정도이며, 한 번에 120~150개씩 5~6회 산란합니다. 모기가 주로 밤에 활동하는 것과 달리 파리는 낮에 주로 활동하며, 야간에는 집안 구석진 곳에서 휴식을 취합니다.

파리는 잡식성으로 각종 음식물과 동물 배설물 등을 닥치는 대로 먹어 치우며, 소화작용도 대단히 빨라 5분 간격으로 배설합니다. 배설물 속에 있는 각종 병원체가 사람이 먹는 음식이나 식기류에 묻어 사람 몸 속으로 침투하게 됩니다. 점액질로 뒤덮인 주둥이의 ‘순판’과 발톱 등에 병원체를 묻혀 음식이나 식기류에 옮기기도 합니다. 따라서 파리와의 전쟁에선 음식물이나 식기에 파리가 앉지 못하도록 잘 관리하는 게 핵심입니다.

잡기도 힘든 것이 파리의 시각이 우리보다 훨신 뛰어나다고 합니다. 사람의 눈은 초당 60개의 이미지를 볼 수 있습니다. 파리는 초당 250개 이상의 이미지를 볼 수 있습니다. 파리의 눈에는 우리들이 슬로우비디오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여서, 우리의 동작을 마치 예측이나 한듯 아주 째빠르게 행동하기 때문에 잡기도 수월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끔찍한 많은 질병을 옮기는 것이 바로 파리입니다. 파리가 온 이집트를 뒤덮어 공격했다면 어마무시한 고통이 이즙트인들의 숨통을 조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파리들의 공격 앞에 바로는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자칭 신이라 명명하며, 사람들 위에 군림하고 경배 받던 바로는 작은 벌레와 곤충들 앞에 철저히 무기력했습니다.

모세에게 '너희의 신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무서운 믐모와 계략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3. 바로는 무서운 음모를 꾸밉니다.
파리 떼 재앙에 못이겨 제사를 허락하지만 바로는 단서를 붙입니다.

"이집트 밖으로 나가지 말고 여기서 제사를 드려라"

참 합리적인 말입니다. "여자들은 물론 노인과 아이들까지 데리고 밖으로 나가는 것이 얼마나 번잡스럽니. 꼭 그렇게 해야 할 이유가 무엇이냐?"

그러나 여기에는 무서운 음모가 있습니다. 이집트인들은 염소를 신성시 합니다. 그들이 보는 앞에서 신을 죽인다는 것은 목숨을 걸고 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들이 히브리인들을 죽일 것입니다(인도에서 소를 잡아 제사를 지내는 꼴입니다).

"너무 멀리가지 말라"

이 또한 바로의 무서운 음모가 도사리고 있는 전략적 제안입니다. 이조건 속에는 여차하면 군사를 풀어 이스라엘을 다시 노예로 끌고 오겠다는 속셈이 담겨 있습니다. 과연 바로는 장자 사망의 재앙이 아니면 굴복하지 않을 정도로 질기고 완고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무서운 음모가 그 안에 담겨 있습니다. 대충, 모양과 형식만 갖춰서 제사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그래도 "너희의 신 여호와가 받으실 것이다."

이것이 악한 것은, 그것은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방법을 무시하는 것으로 차라리 아니하니 만 못한 것이 됩니다.

모세가 한 말 속에는 바로가 제안한 엉성한 예배의 의미와 대비되어 진정한 의미의 예배의 정체는 정신이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희생제사
'희생제사'라는 말속에 담겨 있듯이 이스라엘의 죄 사함을 위해 대신 죽게 될 대속의 죽음을 의미하는 제사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정하신 사람이, 하나님이 정하신 제물만을, 하나님이 정하신 절차와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정하신 장소에서, 하나님께서 정하신 날짜와 시간에 드려야 합니다. 그래야 그분의 공의를 만족하게 하는 제사가 이루시고, 죄 사함의 은혜가 주어지게 됩니다.

성경은 이러한 희생제사를 대충 제멋대로 드렸다가 하나님께 벌을 받은 사람들이 있다고 증언합니다.

- 아비후와 나답의 다른 불

* 레 10:1/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의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

* 민 3:4/ 나답과 아비후는 시내 광야에서 다른 불을 여호와 앞에 드리다가 여호와 앞에서 죽었고 무자하였고 엘르아살과 이다말이 그 아비 아론 앞에서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였더라

* 민 26:61/ 나답과 아비후는 다른 불을 여호와 앞에 드리다가 죽었더라


예배는 정신뿐만 아니라 그 절차나 방식도 그 만큼 중요합니다. 형식은 내용을 담는 그릇과 같아서 내용물이 중요한 만큼 그릇도 중요하다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받으시는 예배의 절차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성전의 구조
성전의 구조는 희생제사의 절차를 잘 보여줍니다.
그 순서는 이렇습니다:

•문- 번제단- 놋바다

•성소: 좌- 촛대(성령의 빛비춤), 우: 떡상(말씀을 상징, 12개), 가운데(지성소 바로 앞)- 분향단: 성도의 기도를 상징합니다.

이 분향단의 향은 특별제조, 이 제조법대로 향을 만들지 않으면 안됩니다. 또 이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용도가 다른 용도로 사용하기위해 제조하면 반드시 죽을 것임을 예고하셨습니다.

또 이 향을 피우기 위해 사용하는 불은 반드시 번제단의 불만을 사용하게 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희생을 믿고 의지하여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만을 하나님이 받으신다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선행이나, 종교적인 열심이나 업적, 공로를 가지고 나아가서 기도한다고 하나님께서 들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성소에서는 가장 잘못된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시지 않은 불로 제사를 드리려다 하나님의 손에 나답과 아비후의 급사했습니다. 하나님이 너무 가혹하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께서 명령하시지 아니하신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은지라.”(레위기 10:1-2)

레위기를 읽는 독자들은 10장에 등장하는 나답과 아비후의 급작스런 죽음을 대할 때마다 의문을 갖습니다. 나답과 아비후는 대제사장 아론의 아들로서 제사장으로서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대제사장 아론이 처음으로 제사를 집행하는 날에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죽음을 맞게 됩니다. 실로 나답과 아비후의 급사는 매우 이례적입니다. 보통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때에는 미리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십니다. 그러나 이들의 경우에는 이런 경고의 메시지가 전혀 나타나지 않습니다. 왜 하나님은 경고도 없이 나답과 아비후를 즉각적으로 심판하셨을까요? 아마도 나답과 아비후에게 임한 하나님의 심판은 이들이 행한 잘못의 심각성과 깊은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노여움을 받아 즉시 목숨을 잃게 된 나답과 아비후의 잘못은 무엇인가요? 왜 하나님은 그들의 목숨을 즉각적으로 취하신 것인가요?

그러나 하나님의 예배가 얼마나 거룩한 일인지 안다면 그런 생각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웃시야의 제사

"그러나 웃시야왕은 자기 세력이 막강해지자 마음이 교만해져서 패망길에 들어서고 말았다. 그는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고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가 분향하려고 하였다. 그러자 대제사장 아사랴가 건장하고 용감한 제사장 80명을 데리고 왕을 따라 들어가서 그를 말리며 이렇게 말하였다. “웃시야왕이시여, 여호와께 분향하는 것은 왕이 할 일이 아닙니다. 이것은 이 일을 위해서 특별히 구별된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제발 성소에서 나가 주십시오. 왕은 범죄하였으므로 더 이상 여호와의 축복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이때 성전 향단 곁에서 분향하려고 향로를 잡고 있던 웃시야가 제사장에게 버럭 화를 내자 그 순간 그의 이마에는 갑자기 문둥병이 발생하였다."(역대하 26:16‭-‬19)


*[갈 1: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갈 1:8-11/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이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라.


사단과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영적전쟁은 지금도 예배를 통해서 진행중입니다.

모세와 바로의 갈등과 전쟁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듭니다.

바로는하나님께서 하라는 것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형편과 상황에 맞게 하고 ... 그러나 이것의 속내는 대충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싸워야 할 사탄의 음모요 전략입니다.

바로는 말합니다. "기도하라." 언뜻보면, 그가 하나님의 유일성과 절대성을 믿는 것처럼 보여집니다. 이는 바로가 여호와의 절대성과 유일성을 인정해서 한 말이라기 보다 다신교적(多神敎的) 종교관을 지닌 그가 또 하나의 신에 불과하다고 여긴 여호와의 도움을 얻고자 하는 이기주의적인 마음에서 요청한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이 말을 달리 표현하면, 파리 떼가 이 땅에서 어서 물러가도록 너희 신께 기도 좀 하라는 뜻입다. 사실 이것이 진정한 회개의 말이 아니라 재앙의 고통을 면해 보고자 하는 임시 방편이었다는 것은 바로가 재앙이 멈추자 곧 그 마음을 다시 완악케하여 약속을 지키지 않은 데서 확연히 드러납니다.


3. 바로는 사실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바로 앞에 서라 그가 물 있는 곳으로 나오리니”(출 8:20)

바로가 아침마다 물을 살펴보는 일은 하나의 종교의식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하나님께서는 여러 번 아침 일찍 또는 물 있는 곳에서 바로를 만나라고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즉, 출 7:15). 나일 강은 이집트의 여신이기에 이곳에서 아침에 물을 붓거나 기도하는 장소가 되었을 것입니다(참조, 출 2:5, 바로의 딸이 목욕하러 나일 강으로 왔습니다).

그는 여전히 하나님이 아닌 이즙트의 신앙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4. 하나님은 독선적인가요?
"우리에게 명하시는 대로 하려 하나이다“

꼭 그렇게반 해야 하는가?

너무 독선적인지 않는가?

1) 희생제사/ 우리의 구원이 피흘림으로만 가능합니다.

구속은, 하나님께서 명하신대로 만 해야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인정된 삶을 산 자가 없습니다. 율법 앞에 흠없고 점없는 삶을 산 하나님의 어린양 나사렛 예수만이 유일한 중보자 이십니다.

*계 5:6/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어린 양이 섰는데 일찍 죽임을 당한것 같더라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히 9:22/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레 17:14/ 모든 생물은 그 피가 생명과 일체라 그러므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어느 육체의 피든지 먹지 말라 하였나니 모든 육체의 생명은 그 피인즉 무릇 피를 먹는 자는 끊쳐지리라

*레 17:11/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히 10: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창 3: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정성과 열심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이 갑자스레 죽으시고 장사되자,
부랴부랴 향품을 준비하여 무덤에 간 여인들이 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 정성과 열심은 참으로 대단합니다.
그런데,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 찾는 사람들: 주님 거기 안 계십니다. 여전히 무덤에 머물어 있다면 그의 죽으심은 헛된 것입니다. 우리의 죄가 여전히 해결받지 못한 것립니다.

-무덤에서 생명을 찾는 사람들: 모든 종교와 사상가들은 죽고 묻혔습니다. 다시 살지 못했다. 그 죽은 자들에게서 생명의 길을 찾으려는 것처럼 어리석은 것은 없습니다.

-예수의 흔적(세마포), 과거에 한 때 머물렀던 자취만을 붙들고 있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름은 같지만 그날 무덤에 거지 않은 다룬 마리아가 있습니다. 그녀는 베다니의 마리아입니다. 그녀는 예수님의 죽음의 의미와 때를 알고 죽기 전에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깨트려 미리 장사지내준 여인입니다. 그녀를 향해 모두가 '아까운 향유(돈)을 허비한다'고 나무랐지만 주님은 다른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 하시니라"(마 26:13)


그 정성과 열심이 크변 클수록 더 억울할 수 있습니다.

속도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방향이듯, 정성과 열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진리와 생명입니다.

예수님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하셨습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종교다원주의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전하는 하나님의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의 희생 제사가 아니면, 결코 구원받지 못합니다.

비스므레한 것으로는 안됩니다. 많은 신이나, 구원의 길 중 하나이므로 그 중에 하나일뿐입니다
바로처럼 직면한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나님은 혼합주의를 싫어하십니다. 옷감을 짤 때, 면과 양털을 섞어 짜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포도밭에 무화과를 섞어서 심지 마라."

양다리를 걸치는 것이 야고보는 세속적인 것이라 정의했습니다.


•기독교 신앙이 독선적입니다.
*[신 4:35] 이것을 네게 나타내심은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그 외에는 다른 신이 없음을 네게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사 44:6]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속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

*사 45:5-7/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이가 없나니 나 밖에 신이 없느니라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찌라도 나는 네 띠를 동일 것이요 해 뜨는 곳에서든지 지는 곳에서든지 나 밖에 다른이가 없는줄을 무리로 알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


하나님이 독선적이라구요, 그런가요?
어떤 신이 하나님 같으신가요?

이는 단지 그의 능력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의 사랑, 희생을 의미합니다.

어떤 신이 자기를 만드신 신을 부정하고 배반하고, 대적까지 하는데... 그들을 위해 무한히 참으시면 그들을 위해 자신까지.내어주신 신이 있나요?

이것을 독선이라고 말할 수 있나요?

어떤 종교의 창시자가 그들을 위해 대신 죽을 때, 자신을 조롱하고 욕하며, 개무시하는 자들을 위해 "그들이.알지 못하고 한다며 대신 변명해주고, 그들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기더하는 신이 있나요?

착쥐하고 이용해 먹기에 혈안이 되어 있지 않나요?
이게 독선이라구요?


과연 기독교는 독선적인가?

우리가 독선이란 단어를 사용할 때는 전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나만 옳은 것이 아니라 다른 것들도 똑같이 옳다는 사실의 전제입니다. 예를 들어서 제주도에서 서울로 가는 길이 많이 있는 상황에서 비행기 타고 이동하는 것만이 옳다고 주장한다면 이는 독선이됩니다. 그런데 만일 실제로 그 한 길만이 존재한다면 그런 상황에서 그 길만이 진리라고 주장할 때 이건 독선이 아니라 사실을 말한 것뿐입니다. 달과 지구의 관계를 빌어서 설명하자면 지구를 도는 위성이 달 하나뿐인 상황에서 달은 지구를 도는 유일한 위성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절대 독선이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가 오직 예수로만 구원받는다고 가르칠 때 그것이 독선인지 아닌지는 그 주장 자체로 판단할 문제가 아니라 그 주장의 전제가 사실인지 아닌지를 밝혀야 합니다. 즉 실제로 구원의 길이 하나라면 기독교의 주장은 독선이 아니라 사실인 것이고, 구원의 길이 많이 있는 상황에서 오직 예수로만 구원이 있다고 주장한다면 그건 분명 독선인 것입니다.

어느 한 종교에 구원이 있는지의 여부는 그 안에 내가 들어가서 깊은 경험을 해보지 않은 이상 확인이 불가능합니다. 또 모든 종교는 겉모양만 다르지 실제로는 같은 신으로 향하는 다양한 길이라는 주장도 본인이 그 모든 종교 안으로 들어가서 구원의 경험을 해보지 않은 이상 역시 확인이 불가능합니다. 이런 경우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각 종교에서 믿을 만한 대표자들의 의견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그것에 기초하여 모든 종교는 같다는 결론을 내리는 것입니다.


결론
*[갈 1: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갈 1:8-11/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11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이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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